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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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짐 나르다 산 굴러떨어져 사망…“X됐네” 30분간 신고 없었다 [사건 속으로]

기사입력 2025-01-31 15:10:00
기사수정 2025-01-31 17: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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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도현 일병 아미산 추락 사망 사건
37㎏ 장비 옮기다 추락…27분 지나 119신고
이미 심정지 상태인데…부모에 “큰 걱정 말라”
군 헬기 구조 실패, 이송 지연…軍 간부 입건
유족 “구른 건 맞는지…구조 지체 진상 규명”
지난해 11월25일 강원 홍천군 아미산 경사로에서 임무 수행 중 굴러떨어져 숨진 김도현 일병. 오른쪽은 김 일병이 넘어진 걸 알고도 가버린 하사와 상병의 모습이 담긴 재연 화면. MBC 실화탐사대 방송화면 캡처

 

강원 홍천 산악지대에서 훈련 중 굴러떨어져 숨진 육군 일병 사건과 관련 신고와 구조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유족은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31일 강원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군 당국으로부터 A 중사와 B 하사, 이들로부터 보고받은 C 소대장 등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11월25일 홍천군 아미산 경사로에서 굴러떨어져 크게 다친 김도현(20) 일병에게 적절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의혹을 받는다.

 

사건 당일 오전 8시쯤 통신병이던 김 일병은 무전병 3명을 호출하는 방송을 듣고 통신장비를 차량에 실어 A 중사, B 하사, 운전병, 상병 등 4명과 훈련 장소인 아미산으로 향했다. A 중사는 “차에서 확인할 게 있다”며 대원들만 올려보냈고, 운전병이 A 중사 대신 12㎏ 장비를 매고 산에 올랐다. 차후 조사 결과 A 중사는 훈련에 참여해야 하는 인원이었지만 차에서 휴대전화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A 중사의 훈련 불참으로 B 하사와 상병, 김 일병도 각각 12㎏, 14.5㎏, 25.16㎏의 장비를 매고 훈련에 나섰다. 예정에 없던 훈련을 하게 돼 전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던 운전병이 산행 중간에 다리를 삐끗하면서 김 일병이 12㎏ 장비까지 대신 짊어졌다. 김 일병은 원래 자신의 25㎏ 짐과 운전병의 12㎏ 짐을 번갈아 올려다 놓는 방법으로 산을 오르던 중 사고를 당했고, 일행들에 의해 비탈면에서 오후 2시29분쯤 발견됐다. 그리고 27분이 지난 오후 2시56분쯤 포대장 지시로 119에 김 일병 구조 요청이 이뤄졌고, 오후 6시29분쯤 김 일병은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유족은 김 일병 발견부터 사망까지 ‘4시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먼저 김 일병을 발견한 뒤 27분간 부대에 보고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김 일병을 최초 발견한 B 하사는 119에 신고하지 않고 부대에 먼저 보고했다. 공개된 발견 당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A 중사는 “움직일 수 있는지 물어봐, X됐네”라고 말했고, B 하사가 “신고하면 안 되냐”고 묻자 A 중사는 “소대장님한테 보고부터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김 일병은 “2바퀴쯤 굴러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빨리 응급실에 가고 싶다” “너무 힘들다” “물”이라고 표현했으며, 물을 달라고 했을 때 B 하사가 “물 줄게”라고 말하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일병의 생전 모습(왼쪽)과 시신을 냉동고에 안치하려는 모습.

 

또 산이 험해 지상 구조가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의무군대 종합센터에 1시간 뒤에 신고했으며, 군 헬기가 구조에 실패하고 돌아간 뒤 소방헬기가 출동하는 등 구조가 지체되면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유족은 주장하고 있다. “군부대 헬기가 미숙해 상황이 정확하게 판단 안 된다” “현장에서 군부대 헬기 철수 시켜달라”는 요구가 계속되자 결국 군 헬기는 구조하지 못한 채 돌아갔고, 신고 약 2시간30분 만에 강원소방 헬기가 출동해 김 일병을 구조했다.

 

유족은 오후 4시51분쯤 심정지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군 당국이 부모에게 “훈련 중 굴러 다리를 다쳤다,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설명한 점에도 의문을 품고 있다. 김 일병 부모는 심정지 상황을 모른 채 아들이 쓸 물품을 챙겨 병원으로 향하다 사망 소식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지난달 31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김 일병의 영결식을 군단장(葬)으로 엄수했다. 김 일병을 순직 처리하고 상병으로 1계급 추서한 군 당국은 그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김 일병을 냉동고에 안치하려 했던 유족 측은 사건이 군사경찰에서 민간경찰로 이첩됨에 따라 고심 끝에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당시 김 일병의 아버지는 장례 이틀째이자 사건 발생 35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군단장에게 “그간 나타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죄송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김 일병 부친은 “굴러떨어진 게 맞는지도 의문스럽다”며 “발견 지점은 등산로도 아닌 산길에서 100여m 떨어진 암벽 아래로, 그 정도로 굴러떨어졌으면 몸에 여러 골절상이 있어야 한다는 산악 전문가들 의견과 달리 아들의 몸에는 심각한 외상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12월9일 3박4일 휴가 나오기로 했었다”며 “‘휴가 나오면 그때 봬요’ 이게 마지막 통화였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 결과 김 일병은 경추 5번 골절과 왼쪽 콩팥 파열로 인해 숨졌다. 그 밖에 등뼈 골절과 심폐소생술(CPR) 중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갈비뼈 골절이 함께 발견됐다.

 

경찰은 A 중사와 B 하사, C 소대장 등 3명이 김 일병에게 적절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