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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등골 휜다”…사교육비 27조원 쓴 대한민국

기사입력 2025-02-02 05:00:00
기사수정 2025-02-04 13: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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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대학 서열화, 개선될 가능성 낮아
사교육비 부담,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증가
부담 완화 방안으로 제시된 직업교육 강화

서울에 거주하는 부부 김모(35), 이모(33·여) 씨는 3년 전 결혼했지만 아직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부담 때문이다. 김 씨는 중견기업에서 대리로 근무 중이며, 이 씨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기엔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이 씨는 "주변 친구들만 봐도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드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며 "학원비, 과외비, 영어유치원, 특목고 준비까지 고려하면 월 100만 원은 기본이고 더 쓰는 집도 많다"고 말했다. 김 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맞벌이지만 수입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집값·물가·노후 대비까지 생각하면 아이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뉴스1

 

지난해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교육 경쟁이 심화되면서 부모들은 더 많은 돈을 사교육에 쏟아붓고 있으며, 그 부담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부부들은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출산을 망설이는 부부들이 점점 증가하면서, 국가적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실질적인 교육비 부담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 학생의 79%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 이는 5명 중 4명이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원에 달했다. 2015년 약 18조 원과 비교하면 8년 만에 50% 이상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초중고 학생 수는 609만 명에서 521만 명으로 15%가량 감소했다.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사교육 시장 규모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38만 원이었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23년 55만 3000원으로 45% 증가했다. 4인 가구 기준 초중고 자녀 2명의 사교육비가 가계 월평균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20%에서 2023년 24%까지 늘어났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부담도 증가했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8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300만 원 미만인 가구보다 3.7배 많았다.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이었다. 2023년 기준 서울 지역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 74만 원에 달했다. 강남구 대치동을 비롯한 ‘교육 특구’ 지역은 사교육비가 더욱 높았다.

 

강남구 도곡동과 역삼동 학생들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9년 기준 140만 원이었다. 서울 지역 전체의 1인당 사교육비 증가율(32%)을 적용하면, 2023년 도곡동과 역삼동의 사교육비는 월 185만 원으로 추산된다. 초중고 12년 동안 이 지역에서 사교육을 받을 경우 총 2억 7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4년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고교생 학부모의 77.1%가 사교육 지출에 부담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중학생 학부모의 경우 76.2%, 초등학생 학부모는 54.4%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흥미롭게도 학부모가 아닌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중학교 사교육비 부담이 고등학교보다 크다는 응답이 많았다. 중학교 사교육 지출이 부담된다는 응답은 75.3%였으며, 고등학교는 74%, 초등학교는 60.7%였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고등학생 74만 원 ▲중학생 59만 6000원 ▲초등학생 46만 2000원 순으로 나타났다.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비용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사교육을 받는 주된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유치원생 학부모의 경우 36.8%가 불안감을 이유로 사교육을 시켰으나 ▲초등학생 37.2% ▲중학생 47.2% ▲고등학생 47.7%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사교육 심화의 원인으로 꼽히는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이었다. 응답자의 82.5%가 향후 학벌주의·대학 서열화가 심화되거나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중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48.3%, ‘심화할 것’이라는 응답은 34.2%였다. 반면 ‘약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11.1%에 불과했다.

 

대학 입학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아니었다. ‘특기·적성’(28.2%)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그다음으로 ‘인성·봉사활동’(25.1%)이 꼽혔다. 수능은 24.6%로 3위에 머물렀고, 이어 고교 내신 성적(20.2%), 면접(1.8%) 순이었다. 이는 전년도 조사에서도 동일한 경향을 보였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사교육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직업교육 강화를 제시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만큼, 기존의 학력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직업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KEDI는 “산업체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교육과 취업을 연계하고, 전문 기술을 갖춘 인력이 우대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교육정책 분야에서도 RISE(지역 혁신 중심 대학 지원체계), 교육발전특구 등의 지속적인 추진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