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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12년간 사교육비 약 2억7000만원…한국 출산 저조한 이유? [수민이가 궁금해요]

기사입력 2025-02-02 08:57:08
기사수정 2025-02-02 09: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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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박미영씨는 둘째 출산 계획을 두고 남편과 고민이 깊다. 집 대출에 자녀 두 명의 사교육비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다. 박씨는 “맞벌이인데도 주택담보대출과 현재 6세 자녀 교육비로 적지 않은 비용이 나가고 있어 둘째 갖기가 매우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사교육비 부담이 큰 것도 한 원인이다”고 꼬집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위치한 한 의대 입시 전문 학원 앞에 의대 준비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사교육비가 자녀 출산에 미치는 영향이 큰 가운데 이를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2일 통계청 초중고사교육비조사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초중고 학생 중 79%가 사교육에 참여했다. 다섯 명 중 네 명이 사교육을 받은 셈이다.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도 27조원에 달했다. 2015년 약 18조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8년 만에 50% 가량 증가한 수치다.

 

반면 초중고 학생 수는 같은 기간 609만명에서 521만명으로 15% 가량 줄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음에도 사교육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17년 38만원이었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불과 6년 만에 45% 가량 늘었다.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에서 초중고 자녀 2명의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20%에서 2023년 24%까지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서울이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이 2023년 기준으로 월 74만원이다. ‘교육 특구’ 대치동 일대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다.

 

강남구 도곡동과 역삼동 지역의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9년 자료(2019 강남구 사회조사 및 사회지표)를 기준으로 월 140만원 가량이다. 2019년에서 2023년 사이에 서울지역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32% 늘었으므로 이 증가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2023년 도곡동·역삼동의 1인당 사교육비는 월 185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만약 초중고 12년간 이 지역에서 사교육을 받는다면 약 2억7000만원을 쓰는 셈이다. 초중고 사교육비가 부모 등골을 빼먹는 ‘등골브레이커’라는 불리는 이유다.

 

사교육비가 1% 증가할수록 합계출산율이 0.192~0.262% 떨어진다는 김태훈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정책&지식포럼에서 해당 논문을 소개한 김 교수는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출산율 하락률(42.9%)의 20% 수준인 7.01~9.56%가 사교육비 증가로 설명된다고 분석했다. 사교육비 1% 증가는 둘째 자녀 출산을 0.303~0.451%, 셋째 이상 자녀는 0.522~0.809%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12년 1.3이었던 합계출산율은 10년 만인 2022년 0.78로 떨어졌다. 2024년에는 0.75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점쳐진다. 뉴스1

외신도 한국의 사교육비를 집중 조명한 바 있다.

 

2023년 4분기 합계 출산율이 사상 처음 0.6명대로 떨어지며 ‘초저출산’ 시대가 도래하자 영국 공영 방송 BBC는 한국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을 능가하는 인구 감소 상황에서도 ‘사교육비’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짚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4세부터 수학, 영어 등의 비싼 수업을 받는데, 이는 한국 사회가 '아이를 실패하게 만들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폐해라고 전했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