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러시아 둘이 우크라이나 운명을 결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가시화한 평화 협상에서 우크라이나가 배제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젤렌스키는 미국이 러시아와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기 전 우크라이나 정부와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도 했다.
AP 통신은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1시간가량 진행한 젤렌스키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인터뷰는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방안을 놓고 러시아와 이미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한 직후에 이뤄졌다.

젤렌스키는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정부를 뺀 채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미국, 러시아를 포함해)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유럽인이 전쟁 종식을 원하는 만큼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면서도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미국,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평화 협상이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미국·러시아 간 양자 회담 형태로 진행되어선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는 “가급적 유럽연합(EU)도 참여해야 한다”며 “그래야 공정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다짐헸으나 그 구체적 방안에 관해선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현재 전황을 보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의 20%가량을 점령한 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러시아군은 북한으로부터 포탄과 미사일은 물론 병력까지 지원받아 한층 강력해진 상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여기며 우크라이나군의 무기와 탄약이 다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이 시작된다면 우크라이나에 매우 불리할 것이 뻔하다. 앞서 푸틴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땅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우크라이나는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평화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의 전쟁 조기 종식론은 러시아의 이 같은 부당한 요구가 결국 관철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래서인지 젤렌스키는 미국이 러시아와 대화를 본격화하기 전 먼저 우크라이나와 충분히 협의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트럼프는 키스 켈로그 전 미 육군 중장을 러시아·우크라이나 특사로 임명했으나 켈로그는 아직 우크라이나에 가지도 않았다. 젤렌스키는 조만간 자신이 직접 트럼프와 만나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을 향해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지난 3년간 러시아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확인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누가 나토에 가입하고 누구는 가입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는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푸틴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에 지난 3년간 실전 경험을 쌓은 80만명 규모의 군대가 있다는 점을 들어 “우리의 나토 가입은 동맹에 확실한 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