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내 땅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나는 백두산 안 갑니다.’
고 박배엽(1957~2004) 시인은 1991년 ‘백두산 안 갑니다’라는 작품을 통해 통일된 나라의 백두산에 가고 싶다고 절규했다, 통일된 조국의 백두산을 꿈꾸며 뜨거운 염원을 노래한 그는 기리는 추모식이 이달 8일 오후 4시 전북 김제 모악산에서 열린다.

전북작가회의 주최로 열리는 박배엽 시인 21주기 추모식에서는 후배 문학인들의 시·수필 낭독과 추모 문학 작품 소개, 지인들의 추억 나눔, 유족 인사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고인의 삶과 문학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 30여 편을 소개하고, 투병 중이던 그의 쾌유를 빌며 단편 소설 ‘오래된 잉태’(2002)를 쓴 한상준 소설가의 짧은 강연도 마련된다.
박배엽 시인은 비록 한 권의 시집도 남기지 않았지만, 평생 시를 쓰는 자세로 살아온 문학인으로 꼽힌다. 그는 남민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1985년 남민시 제1집 ‘들 건너 사람들’을 통해 문단에 입문했다. 이후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사무국장과 전북작가회의 대변인 등을 역임하며 지역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박배엽 시인은 1980~90년대 전북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서 시민사회운동에 헌신했다. 전북민주화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새길청년회 활동, 비전향 장기수 후원 운동 등 사회 변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1991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구속되기도 했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는 전북대학교 대학로에서 사회과학·시집 전문책방인 ‘새날서점’을 운영하며 문화운동에 앞장섰다.

그의 삶을 함께하고 기억하는 많은 동료 문인과 지인들은 “그가 떠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삶의 길을 함께 걷는 벗”이라며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또 그를 ‘전주의 시심’이라 부른다. 한없이 따뜻한 마음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가졌던 그는, 독서와 토론을 즐기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거리의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인 임용진 새전북신문 논설고문은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의 부정의에 분노하고 불공편에 잠 이루지 못했다”며 “고교 종업장이 전부였지만, 압도적인 독서를 했고 뜨거운 가슴으로 웅변과 답변을 쏟아냈던 거리의 지식인이었다”고 회자했다.
김선경 소설가는 “그는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전화를 걸어 낭송하고 싶은 시인이었다”라고 회상하며, “그의 순수한 열정과 따뜻한 배려가 우리를 여전히 감싸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규 문학평론가는 “남들은 둔감하게 넘어가는 일 하나에도, 왜 그래야 하는지 날을 세워가며 본인이 납득할 때까지 사람을 붙들어 놓는 사람이 그였다”고 기억했다.
안도현 시인은 “그가 살았던 세상은 뜨거웠으나 우리는 희멀겋고 팍팍한 이곳에 아직도 웅크리고 산다. 죽어서도 그는 “니들 뭐해?” 하고 물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라며 등불과 같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최기우 극작가는 “그의 맑음은 참으로 투명해서 세상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비춰내면서도 여전히 아름답다”며 “이땅의 시인들이 시보다 시적 허용이 더 많은 삶을 살았던 그에게 ‘시인’이란 헌사를 바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