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용산구 국립 한글박물관에서 난 큰불로 2개 층이 완전히 탔음에도 다행히 인명 피해와 보물 ‘월인석보’ 등 문화유산 소실이 없었다. 다만 상대적으로 안전관리가 취약한 휴일에 박물관 내부 공사 도중 화재가 난 점을 감안, 문화재 관리에 대한 경각심 제고와 함께 ‘휴일 공사’ 현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8시40분쯤 난 불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박물관 3, 4층을 모두 태우고 6시간42분 만인 오후 3시22분 진화됐다. 이 과정에서 건물 내부로 진입했던 소방대원 1명이 철근 낙하물에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박물관 안에 있던 작업자 6명 중 2명이 구조됐고 나머지는 무사히 대피했다. 박물관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증축공사로 휴관 중이라 관람객은 없었다.
2014년 문을 연 한글박물관은 한글 관련 문헌 자료 등 8만9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한 점도 훼손되지 않았다. 소장품 중에는 세조 5년(1459년)에 간행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나온 우리나라 불경 언해서인 ‘월인석보 권9, 10’과 ‘정조 한글어찰첩’, ‘청구영언’(1728년 편찬된 노래집) 등 9건이 보물로 지정됐고, ‘삼강행실도(언해)’ 등 시도유형문화유산도 4건이 있다.
문체부는 “국립박물관 3∼4층 철제 계단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불티가 발생해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한다”며 “만일에 대비해 소장 유물 26건 257점을 인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원인과 함께 건물 내 스프링클러와 제연설비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 살피고 있다. 4일에는 현장 감식도 한다.
박물관 측은 전체 소장품과 자료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분산해 옮길 예정이다. 10월 예정된 박물관 재개관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문화계 한 관계자는 “한글박물관에 불이 났다는 뉴스를 접하고 2008년 2월 발생한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당시 겪은 ‘큰 아픔’이 떠올랐다”며 “다행히 큰 화는 면했으나 문화유산 관리에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날 화재 현장을 찾은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갑작스러운 화재 소식으로 국민 여러분께 참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문체부 산하에 다중문화시설이 많은데 철저히 점검하고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가 공사 현장 사고가 상대적으로 잦은 휴일에 발생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중대건설현장 사고의 36%가 휴일에 발생했고, 주말이 평일보다 최대 1.4배 더 많다. 이른바 ‘돌관공사(突貫工事)’로 불리는 휴일 작업은 공사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시공사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작업자는 평일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추가로 작업하는 것이라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고 안전관리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직원 휴무를 보장하기 위해 일용직을 쓸 경우 현장 상황 파악과 일 숙련도 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규모 시공업체는 휴일에 안전관리자를 따로 두지 않은 채 작업하기도 한다.
40년 넘게 건설업에 몸담은 박경재(65) 상산건설 대표는 “약속한 일정을 못 지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니까 작업 속도가 느린 것 같으면 휴일근무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천재지변은 공사기한에서 빼준다고 하지만 인정받는 게 복잡하고 발주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원칙이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글박물관 공사와 관련해서도 이런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