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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시위 트라우마 심한데…” 상담조차 받기 힘든 경찰들

기사입력 2025-02-03 19:08:30
기사수정 2025-02-04 18: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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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격화 속 물리적 충돌 심각
정신적인 고통 호소 증가 불구
서울 내 경찰상담센터 2곳 그쳐
인력도 2명뿐… “관리 사각” 지적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격화된 집회시위로 현장 경찰관들의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들의 정신건강을 돌보기 위한 전담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경찰 정신건강 상담센터 한 곳에서 연 2300여건의 상담이 이뤄지지만, 전담 인력은 고작 2명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물리적 충돌이 늘어나면서 현장 경찰관의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서울의 한 지구대 경위 A씨는 “최근 시위 양상이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동료들의 안전이 더 걱정된다”며 “경찰이 맞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위협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당시 부상을 입고 피 흘리는 경찰관들. 엑스 캡처

경찰은 외상 위험에 노출이 잦으면서도 후유증 관리에는 취약한 직업군이다. 최근 집회시위뿐 아니라 살인 현장이나 시신을 접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험도 높다. 실제 한국심리학회지가 201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경찰관의 PTSD 발병률은 일반인의 4배에 달한다.

 

경찰의 직업적 취약성을 고려한 ‘경찰 보건안전 및 복지증진 기본계획’에 따라 경찰청은 전국 18개소에 경찰관의 정신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마음동행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급증하는 상담 수요와 달리 이를 감당할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소재 2개 마음동행센터 중 하나인 보라매병원의 상담 건수는 2020년 856건에서 2024년 2377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문의 진료가 필요한 내담자 비율도 2022년 2.8%에서 2024년 6.2%로 급증했다.

 

하지만 현재 상담전문인력은 책임상담사 1명, 일반상담사 1명 등 2명뿐이다. 지난해 기준 513명이 2377회 상담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상담사 1인당 연간 1188회, 하루 평균 4.8회의 상담을 진행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지난달 19일 서부지법 후문 인근에서 경찰이 시위 중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해산시키려고 하자 지지자들이 이를 막고 있다. 연합뉴스

상담 인프라 부족과 더불어 경찰의 경직된 조직 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감 B씨는 “프로그램을 익명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공가를 내야 하니 팀장과 과장을 거칠 수밖에 없다”며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여겨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지구대와 파출소는 팀 단위로 움직이다 보니 한 명이 빠지면 나머지 팀원의 부담이 늘어나 저연차 경찰일수록 상담 프로그램 이용에 소극적이다. 

 

채정민 서울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경찰의 PTSD는 치료가 어려운 데다 유사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직업 특성상 재발 위험도 높다”며 “경찰관에게 적시에 적절한 도움을 주지 않으면, 경찰 조직 차원에서도 팀워크를 잘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