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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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비극’의 재연?…수원시 여자 아이스하키팀 존폐 위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사입력 2025-02-03 23:00:52
기사수정 2025-02-10 19: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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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 2년째 예산 50% 수준으로 유지…정부에 책임 넘겨
시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12명으로 팀 꾸려도 위기
2018년 평창올림픽 계기 창단…국대 26명 중 15명 몸담아
“아무것도 결정 안 돼…운동에만 전념하도록 지원해야”
과거 성남시, 쇼트트랙 등 12개 종목 해체…귀화 ‘후폭풍’

국내 유일의 실업팀으로 사실상 국가대표 상비군 역할을 맡은 경기 수원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예산 부족으로 위태로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막바지 담금질에 들어간 하키팀은 올해 초까지 시의회의 예산 감축과 미온적인 정부 지원 탓에 존폐 기로에 놓여 있었다. 2018년 12월 국내 최초의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으로 ‘화려하게’ 창단한 지 7년 만에 팀 해체까지 거론된 셈이다. 

 

3일 체육계에 따르면 수원시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지난해 12월 폴란드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3차 예선 도중 운영 예산이 3개월 치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수원시의회가 전년에 이어 선수단 예산안을 줄여서 편성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가까스로 팀을 꾸려온 선수단은 ‘시한부 선고’에 다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2023년 4월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폐회식이 열린 경기 수원 광교복합체육센터에서 수원시 소속 선수들이 세계대회 2부 리그 승격을 축하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시의회는 여자 아이스하키리그가 국내에 없고, 시정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23년 12월 예산 편성 때부터 기존 운영 예산의 절반 수준으로 규모를 줄였다. 국가대표 상비군 역할을 하는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수원시가 아닌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도 반영됐다. 시의회는 더 큰 폭의 삭감을 논의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통상 25명 규모의 아이스하키팀을 꾸리기 위해선 연간 20억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수원시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비용 절감을 위해 12명의 선수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밑바닥’ 수준인 3000만∼4000만원가량의 연봉을 받으며 뛰는데, 여기에 훈련비 등을 포함해 연간 최소 8억원의 운영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의회가 2년째 예산을 줄이면서 시 예산은 4억원가량만 투입되고 나머지 절반을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에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떠안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체부는 다른 시·군과 형평성을 고려해 직접 지원에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시·수원시의회 청사. 수원시 제공

당장 내년부터 수원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다시 존폐 갈림길에 내몰려야 한다. 수원시 하키팀은 2018년 1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불과 보름가량 앞두고 불모지인 여자 아이스하키 육성을 위해 창단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 창단은 같은 해 12월 이뤄졌다. 

 

수원시체육회 관계자는 “아직 팀의 운명이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26명의 선수단 중 지도자 3명을 포함해 모두 15명이 수원시 소속”이라고 강조했다. 팀 관계자는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앞서 2023년에도 시의회에서 여자 아이스하키팀 운영을 두고 논란이 일자 수원시체육회와 아이스하키협회 등 관련 기관들이 선수단 소속을 시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도내에선 시·군들이 체육 활성화를 위해 매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예산을 떠안지만 국비 보조 비율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수원시의 경우 14개 직장인운동부를 운영 중이며 연간 예산은 110억원을 웃돈다. 다만, 프로구단인 수원FC에는 연간 150억원가량의 시 예산이 투입된다. 

 

2022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중국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자 빅토르 안 기술코치(안현수·왼쪽 두 번째)가 환호하고 있다. 뉴스1

도내 비인기 동계스포츠단의 해체는 2010년 이재명 시장 재임 당시 성남시에서 일어난 쇼트트랙팀 해단이 선례로 남아 있다. 2010년 7월 성남시는 채무 누적을 이유로 모라토리엄(채무지급 유예)을 선언했고, 같은 해 12월 15개 종목 가운데 쇼트트랙을 포함한 12개 종목 팀을 해체했다. 팀을 잃은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는 2011년 러시아에 귀화했다.

 

안 선수는 앞선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했지만 무적(無籍) 상태로 있다가 귀화를 신청했고 넉달 만에 러시아 대통령 특별 명령으로 귀화가 받아들여졌다. 안 선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러시아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다만, 안 선수의 귀화를 두고 추후 정치권에서 책임공방이 일자 안 선수의 부친은 팀 해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