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범죄 조직원이었던 민태(하정우·사진). 출소 후 손을 씻고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그는 여전히 제도나 규율로 길들여지지 않는 남자다. 언제나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 월급이 밀리면 동료들은 사장의 등에 대고 아우성을 치지만, 민태는 머리를 갈기고 흉기로 위협해 돈을 받아낸다.
무기를 휘두르는 걸 주저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애틋해하는 존재는 동생 석태. 막노동으로 번 돈을 생활비에 보태라며 제수 문영(유다인)에게 다달이 송금할 정도다. 민태에게 석태는 자식 같은 동생이다. 어린 석태를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직에 들어앉혀 어둠의 길을 가도록 만들었다는 과거사로 인한 복잡한 심경 때문일 테다. 음으로 양으로 동생을 챙기지만, 여전히 범죄조직 생활을 하는 석태는 마약으로 망가진 지 오래다.
어느 날 밤 “사고를 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남긴 후 석태는 연락이 두절되고, 며칠 후 심하게 손상된 시신으로 민태 앞에 돌아온다. 그리고 석태에게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문영은 은행 계좌의 돈을 모조리 출금해 사라진다. 민태는 쇠파이프를 담은 가방을 들고서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분노의 추적을 시작한다. 결국 그는 동생이 죽은 그날의 진실에 다가간다.

◆하정우의, 하정우에 의한, 하정우를 위한
5일 개봉하는 영화 ‘브로큰’은 ‘공작’ ‘아수라’ ‘헌트’ ‘신세계’ 등과 ‘최악의 악’ ‘강남 비-사이드’ 등의 시리즈로 범죄영화와 누아르에 특화한 필모그래피를 축적해 온 사나이픽처스가 제작했다. 사나이픽처스 영화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익숙한 코드들은 반복된다. 조직 보스 창모를 연기한 정만식 등 조연진은 사나이픽처스 작품에 여러 번 출연한 ‘사나이픽처스 사단’ 배우들이 다수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과 ‘군도’ 등에서 제작자로 하정우와 작업했던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이번에도 ‘하정우 활용법’ 노하우를 200% 발휘한다.
영화는 하정우 원톱 액션물이다. 파이프 하나를 손에 들고 모든 것을 부수는 민태의 존재감은 사실상 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가 두 번 등장한다. 민태가 긴 골목을 걸어가며 조직원들을 한 명씩 해치우는 장면. 그리고 동생의 장례식이 끝난 뒤 검은 양복을 입은 채 부둣가에서 조직원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부둣가 혈투에서 민태는 쇠파이프와 꽁꽁 언 생선을 무기 삼아 싸운다. 촬영 현장에서 하정우가 떠올린 즉흥 아이디어였다. 김진황 감독은 지난달 ‘브로큰’ 언론시사회에서 “얼린 생선을 무기로 들자는 하정우의 아이디어 덕분에 로케이션의 특색이 잘 드러나고 생동감 넘치는 액션신이 완성됐다”고 평했다. 하정우는 “촬영지의 지형지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최대한 현장감을 살려내려 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하정우는“‘브로큰’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연기하기 재밌는 작품, 자유로움을 담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다”며 “이야기를 끌고 나갈 때 기능적으로 계산된 연기를 해야만 해 표현의 한계에 부닥치는 캐릭터가 많은데, 이 배역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이야기가 앞서고 캐릭터가 따라가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민태가 주체적으로 앞서나가면 이야기가 따라오는 시나리오”라며 “과거 나홍진 감독의 ‘황해’ 속 ‘구남’ 역이 그랬다”고 덧붙였다.
◆맥빠지는 전개…스타에 기대는 매너리즘?
추적극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베스트셀러 작가 호령(김남길)이 등장하면서부터 미스터리물로 급선회한다. 호령의 소설 ‘야행’에는 석태와 문영을 본뜬 듯한 남녀 캐릭터가 등장한다. 여자가 남자의 폭력에 지쳐 그를 살해하는 결말이다. 문영이 호령과 오래 교류하던 사이였다는 것, 소설이 문영과 석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민태가 눈치채면서 숨어버린 문영을 찾는 민태의 추적은 더욱 숨가쁘게 진행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민태의 여정과 영화 속 소설인 ‘야행’의 서사가 서로 교차하거나 평행선을 달리며 영화를 떠받치는 두 축이 되기를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 기대감은 철저히 배반당한다. 호령과 문영의 이야기는 쪼그라들어 불필요한 장식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이후 석태 죽음의 전말은 밝혀지지만, 치밀하게 축조됐던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을 때 오는 쾌감은 느낄 수 없다. 호령이 쓴 소설에 범죄를 예견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설정이 왜 필요했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하정우라는 걸출한 스타의 이미지에 기대는 매너리즘이 가득한 기획이라는 수군거림이 뒤따를 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일부 관객은 한국영화의 습관을 맥없이 반복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게 색깔 있는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의 본질이라고 여길 법하다. 어느 쪽이든, ‘브로큰’은 설령 스포일러가 노출되더라도 보는 재미만은 잃지 않을 영화다. 여러 번을 반복해 관람해도 재차 숨죽이고 즐길 수 있는 빼어난 액션신들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