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총지출 집행률이 96.1%에 그칠 것이라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망이 나왔다. 56조원대의 대규모 세수펑크가 발생했던 2023년(95.6%)과 비슷한 수준으로 총지출 집행률이 낮을 거란 얘기다. 2023년에 이어 지난해 30조원 안팎의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측된 뒤 정부가 각종 가용재원 등을 활용해 “세출 예산을 최대한 차질 없이 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약속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12·3 비상계엄 사태’ 등 악재가 지속됐음에도 정부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성장세가 더욱 약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최근 펴낸 ‘NABO 경제동향 & 이슈’(1월호)에 따르면 예정처는 지난해 12월까지 총지출 집행률을 96.1%로 추정했다. 이는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평균 총지출 집행률인 98.1%와 비교해 2%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예정처는 “정부의 총지출 집행률이 지난해 9월 이후 예년의 평균 집행률을 하회하고 있다”면서 “특히 지방정부의 경상이전 집행률은 6월부터, 가계 등 경상이전 집행률은 9월부터 예년 평균을 밑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상이전 지출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지자체 등에 대가 없이 지출하는 경비를 의미한다.
재정당국의 공식 통계를 봐도 총지출 집행률은 예년보다 낮은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총지출은 570조1000억원으로 본예산(656조6000억원) 대비 집행률은 86.8%에 머물렀다.
이는 56조4000억원의 세수펑크로 재정운용이 크게 제약됐던 2023년 11월 당시 집행률(85.9%)보다 0.9%포인트 높지만 예년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실제 세계일보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11월 기준(누적) 총지출(추경 기준) 집행률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보다 총지출 집행률이 낮았던 해는 없었다. 총지출 집행률은 2013년 11월 87.0%이었고 2014~2016년 88%대를 기록한 뒤 2017년 90.2%로 90%를 넘었다. 이후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11월 기준 총지출 집행률은 90%를 상회했다.

문제는 정부가 “국회에서 심의·확정한 세출 예산을 최대한 차질 없이 집행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총지출 집행률이 예년보다 낮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9월 2024년 국세수입이 337조7000억원에 그쳐 본예산(367조3000억원) 대비 29조6000억원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후 10월에는 ‘세수재추계에 따른 재정 대응방안’을 발표하면서 △주택도시기금 등 가용재원 14조~16조원 △교부세(금) 삭감(-6조5000억원) △불용(7조~9조원)을 활용, 세수 부족이 일자리 등 민생·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총지출 집행률이 작년처럼 낮은 수준에 머물면서 재정 당국의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예정처는 “2024년 11월 기준 재정지출 집행률은 86.8%로 전년(2023년)에 이어 미집행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총지출 집행률이 떨어지고, 내수부진까지 지속되면서 지난해 성장률 전망치는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3일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1%로 집계돼 작년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0%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전망치(2.2%)보다 0.2%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2023년의 경우 12월까지 총지출이 610조7000억원에 머물러 본예산(638조7000억원) 대비 약 28조원 재정이 집행되지 않으면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령 일반회계에서 다른 회계·기금으로 전출되는 전출금의 경우 내부거래 불용액이 14조8000억원에 달해 전년(2조1000억원) 대비 12조원 이상 급증했다. 이 중 재정여건에 따라 편성되는 임의전출금을 보면 주택도시기금으로의 일반회계 전출금 1조5000억원이 불용되는 등 각종 회계와 기금이 위축됐다.
전문가들은 총지출 집행률이 낮아지면서 지난해 성장세가 위축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부진한 상태에서 세수 결손이 큰 폭으로 발생했으면 경기 부양 차원에서 재정 지출을 확장적으로 해야 된다”면서 “그럼에도 총지출 집행률이 낮다는 건 정부가 계속해서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