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MBK)의 7조원이 넘는 거금을 들인 인수와 로켓배송에 약 2조원 투자 선언으로 2015년에 주목받았던 홈플러스와 쿠팡의 10년 후 현실이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MBK는 2015년 9월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향후 2년간 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도 “로켓배송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3만9000명을 채용하겠다”고 알렸다.
당시만 해도 두 유통 기업에 대한 시각은 달랐다. 쿠팡의 도전은 불가능하다는 반면에 새 주인을 맞은 홈플러스는 재도약에 성공한다는 관측이 대세였다. 하지만 두 기업의 현주소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2015년 매출이 홈플러스 연매출(8조5682억원)의 13%에 불과한 1조1133억원이었던 쿠팡은 온라인 시장을 토대로 한 고속 성장을 발판삼아 매출이 40조원대에 이르고, 2년 연속 영업 흑자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구와 인천 등 14곳이 전부였던 쿠팡은 영업 손실마저 2016년(5652억원), 2018년(1조970억원) 등 해가 갈수록 가중되면서 업계 안팎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쿠팡은 위기 순간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을 반복적으로 설득했고, 세콰이어 캐피탈·블랙록·소프트뱅크 등에서 34억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15~2022년 6조원이 넘는 누적 영업 손실을 내면서도 쿠팡은 30개 지역에 100개 이상 자동화 첨단시설 등을 갖춘 물류센터를 건립했고, 창립 11년 만에 뉴욕증시(NYSE) 상장까지도 성공했다.
자고 일어나면 주문한 물건이 집 앞에 있는 ‘로켓배송’이 현재 전국 260개 시군구 중 182곳에 닿으며, 2027년부터는 230여개(약 5000만명)로 그 범위도 더욱 넓어진다.

반면에 홈플러스는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했는데, 홈플러스가 과거의 ‘투자 약속’이 아니라 ‘부동산 매각’에 올인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MBK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1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듬해인 2016년, 가좌점·김포점 등 5개 점포를 매각하고 재임차해 경영자금을 확보하겠다고 나섰다. ‘부동산 유동화’에 본격 시동을 걸겠다는 신호탄이었다.
현재까지 홈플러스의 자산 매각대금은 4조원에 이른다. 한때 140개였던 점포도 이제는 126개로 줄었고 앞으로도 더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쿠팡이 6조원 누적 영업적자를 쌓은 2015~2022년 홈플러스는 9102억원의 누적 영업흑자를 냈다. 하지만 이 기간 홈플러스가 신규 투자한 점포는 파주운정점(2016년)에 불과했다. 당초 약속한 1조원 규모의 투자 약속 대신 자산매각에만 속도를 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기존 점포로도 충분히 온라인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 했지만 결과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시대 변화에 안이하게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온라인 시장 성장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짚었다.
다른 관계자는 “쿠팡은 6조원대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망에 투자한 이후 2023년부터 영업흑자 기조에 돌아섰음에도 추가 3조원 물류 투자를 진행하는 등 고객 혜택을 강화했다”며 “유통기업의 본질은 ‘수익 추구’가 아닌 ‘고객 가치’에서 나온다는 근본 철학”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물건 판매만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등 유통 외적 분야로의 시각 전환도 승패를 갈랐다.
쿠팡은 2019년 와우 멤버십을 런칭했고, 무료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신선식품)과 직구, 쿠팡플레이 무료시청, 쿠팡이츠 무료배달 등 10가지가 넘는 혜택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예능이나 영화뿐만 아니라 실시간 스포츠 중계까지도 하는 쿠팡플레이는 특히 남성 고객에게 없어선 안 되는 서비스로 손꼽힌다.
네이버(네이버플러스)와 이마트·신세계(신세계유니버스), 컬리(컬리멤버스) 등 온오프라인 유통업계도 일제히 배송·적립·엔터테인먼트 등을 활용해 충성고객 확보 경쟁에 나섰다. 이러한 경쟁에서 홈플러스는 뒤처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방면 시장 공략은 일자리 격차까지도 낳았는데,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쿠팡(택배·물류 자회사 포함)이 만든 전국 직고용 일자리는 2015년 5465명에서 지난해 말 8만89명으로 급증했지만 홈플러스는 2만6000여명에서 1만9326명으로 감소했다.
지난달 말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내린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이익 창출력 약화와 현금 창출력 대비 과중한 부담 등을 그 이유로 든다.
자금 관련 이슈 발생을 우려한 홈플러스는 단기자금 상환 부담 경감을 위한 회생 절차 신청이라며 사전 예방 차원의 조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행히 물품 대금 미지급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신용등급 하락으로 금융 기관에서의 운영자금 대출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대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먼저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는 게 홈플러스의 입장이다.
부채비율이 지난 1월 말 기준 462%로 1년 전보다 1506%포인트 개선됐다면서, 직전 12개월 매출은 7조462억원으로 2.8% 신장했다고 강조하는 홈플러스는 회생 개시 결정으로 금융 부담이 줄어 현금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