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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재계 유리천장…여성 리더는 왜 부족한가

기사입력 2025-03-07 21:00:00
기사수정 2025-03-07 19: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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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인권 신장은 여전히 선진국 중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자산 2조원 이상 금융회사 99곳 중 28곳은 여전히 여성 등기이사가 단 한 명도 없다. 금융분야에서 여성의 승진을 막는 유리천장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여성들은 ‘조직 내 문화 및 구조적 장벽’(19.9%), ‘사회적 편견’(13.9%) 등을 주요원인으로 뽑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자산 2조원 이상 금융사 99곳 중 28곳은 여성 등기임원 0명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과 각 업권별 협회 등에서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금융지주·은행·증권사·생보사·손보사·카드사 총 99개사의 등기임원 현황이 이처럼 나타났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작년 말 기준, 나머지 금융사는 올해 2월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다.

 

99개사의 총 등기임원은 총 682명이었고, 이중 여성 등기이사는 96명으로 여성 비율은 약 14%에 불과했다. 업권별로 나눠보면 증권사의 여성 등기이사 비율이 11.1%(189명 중 21명)로 가장 낮았고, 금융지주의 여성 임원 비율이 20.7%(92명 중 19명)로 가장 높았다. 은행은 13.8%(152명 중 21명), 카드사는 14.5%(55명 중 8명), 생보사는 12.5%(128명 중 16명), 손보사는 16.7%(66명 중 11명)이었다.

 

특히 이중 은행 6곳(부산·전북·광주·수협·산업은행·케이뱅크), 증권사 14곳(KB·유안타·교보·신영·IBK투자·유진투자·LS·BNK투자·DB금융투자·IM·케이프투자·골드만삭스·리딩투자·상상인증권), 생보사 6곳(DB·농협·iM라이프·하나·KDB·흥국생명), 카드사 2곳(현대·우리카드)은 전체 등기이사가 전부 남성이었다. 여성 등기 임원이 있는 회사들도 대부분 한 명에 불과했다.

 

오희정 사무금융노조 여성위원장은 “금융회사에서 여성들의 승진이 차별받는 유리천장이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면서 “자본시장법에서 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 기준을 자산총액 2조원 이상에서 1조원 이상으로 개정하고, 여성 할당제 등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정 의원은 “여성 등기이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금융회사가 여전히 많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며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금융권이 보여주기식 대응을 넘어 획기적인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여전한 유리천장…OECD 29개국 중 28위

 

실제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국 가운데 28위를 차지했다.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29위를 기록하다 올해 처음 꼴찌를 면했다. 하지만 13년째 일하는 여성에게 가혹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5일(현지시간)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29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하는 여성의 노동참여율, 소득, 고위직 여성 비율, 유급 육아휴직 현황 등 10개 지표를 반영해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2013년부터 매년 유리천장 지수를 산정하고 있다. 지수가 낮다는 건 일하는 여성의 환경이 전반적으로 열악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여성 노동참여율이 남성보다 15.9%포인트 낮아 튀르키예(37.3%포인트) 이탈리아(18.1%포인트) 다음으로 성별 격차가 컸다.

 

특히 한국 여성들은 심각한 소득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들의 여성 평균 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평균 11.4% 낮았으나, 한국의 경우 성별 임금격차가 29.3%로 가장 컸다.

 

관리직 여성 비율(16.3%)과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17.2%)도 뒤에서 2∼3번째 수준에 그쳤다. 한국 여성의 의회 진출 비율도 20%였다. 남성의 유급 출산휴가는 한국이 29.2주로 조사돼 일본(31.1주)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일본 모두 출산휴가를 실제 사용하는 남성은 드물다고 꼬집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대한민국은 왜 여성리더가 부족한가

 

이같은 조사결과가 나오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많은 여성들이 육아에 대한 부담과 조직내 구조적 장벽으로 리더로 성장하는데 한계를 느낀다.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직장과 여성 리더십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퇴근 후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미취학 자녀를 둔 직장인들에게 퇴근 후 자녀를 주로 누가 돌보는지 물은 결과, ‘본인 또는 배우자’가 양육을 맡는 비율이 75.1%로 가장 높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리더 비율이 적절한지에 대한 질문에는 ‘부족하다’는 응답이 37.5%로 집계됐다. 이를 성별로 나누어 보면, 남성 응답자의 22.8%가 부족하다고 본 반면, 여성 응답자는 52.2%로 절반 이상이 여성 리더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는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성이 리더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는 ‘가사 및 육아 부담’(35.9%)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 이어 ‘조직 내 문화 및 구조적 장벽’(19.9%), ‘사회적 편견’(13.9%)이 주요 요인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 네트워크 및 멘토링 부족’, ‘롤모델 부재’ 등의 문제도 중요한 도전 과제로 인식됐다.

 

여성 리더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는 ‘성별에 관계없는 공정한 기회 제공’(28.0%)이 최우선으로 꼽혔다. 이어 ‘가사 및 육아 분담 개선’(26.1%), ‘사회적 인식 변화’(17.0%), ‘기업 내 여성 승진 기회 확대’(9.5%), ‘여성 리더십 교육 및 멘토링 강화’(8.1%), ‘법·제도적 지원 강화’(6.4%), ‘여성 네트워크 및 커뮤니티 활성화’(1.8%) 순으로 나타났다.

 

피앰아이 관계자는 “육아 부담과 경력 단절 우려가 여성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임을 보여준다”고 언급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과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