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중국 고위급들의 기자회견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인상 등 대(對)중국 압박에 강하게 맞서겠다면서도 미·중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또 미국이 동맹국들에 ‘관세 폭탄’을 언급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밀어붙이는 것을 틈타 외교력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외교수장 “탄압한다면 중국은 단호히 반격할 것… 평화공존해야”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7일 연례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협력을 선택한다면 윈윈을 실현할 수 있고, 한사코 탄압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단호히 반격할 것”이라며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인 중국과 미국은 지구에 오래 존재할 것이고, 따라서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중국은 계속해서 중·미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에 힘쓸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이 중국과 함께 양국과 세계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공존의 길을 걷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펜타닐 문제 대응 부족을 명분으로 중국 겨냥 관세를 인상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의 펜타닐 남용은 미국 스스로가 직면·해결해야 할 문제로, 중국은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미국에 각종 도움을 제공했다. 미국은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되고, 이유 없이 관세를 높여서는 더욱 안 된다”며 “이는 책임 있는 대국의 행동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왕 부장은 이어 “미국은 최근 관세 전쟁과 무역 전쟁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봐야 한다. 무역 적자가 확대됐나 축소됐나. 제조업 경쟁력이 올라갔나 내려갔나. 인플레이션이 좋아졌나 나빠졌나”라며 “중·미 경제·무역 관계는 상호적이고 대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행보에 대해서는 “세계에 190여개 국가가 있는데 모든 국가가 자국 우선을 강조하고 힘의 지위에 빠져있다면 이 세계는 정글의 법칙으로 회귀할 것”이라며 다자주의를 중요하게 보는 중국의 입장을 강조했다. 그는 “서방에는 ‘영원한 친구는 없고 오직 영원한 이익만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에서 보면 친구는 응당 영원해야 하고 이익은 응당 공동의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왕 부장은 미·러 관계 회복이 중·러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관한 질문에는 “성숙하고 강인하며 안정된 중·러 관계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게 아니고 제3자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며 “혼란한 세계의 상수이지 지정학적 게임의 변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선 “한 국가의 안보는 다른 국가의 불안 위에 세워져선 안 된다”며 “공동·종합·협력·지속 가능의 새로운 안보관을 실천해야 유라시아 대륙과 세계의 항구적 안정을 진정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중국산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와 미·중 첨단 산업 경쟁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왕 부장은 “우주 과학·기술이든 반도체 제조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부당한 탄압은 멈춘 적이 없다. 하지만 봉쇄가 있는 곳에 돌파구가 있고, 탄압이 있는 곳에 혁신이 있다”며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중국으로의 첨단기술 유입을 차단하는 미국 정책)로는 혁신적 사고를 멈출 수 없고,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은 이날 1시간30분가량 이어진 회견에서 중국 매체들과 러시아·미국·인도네시아·영국·튀르키예·나이지리아·파키스탄·프랑스·일본·브라질·싱가포르·인도 등 외신을 합쳐 모두 21개의 질문을 받았다. 다만, 한국 매체의 질문은 받지 않았고, 한·중관계나 한반도 문제에 관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상무부장 “무역전쟁 승자 없어… 미국 잘못된 길로 간다면 중국은 끝까지 싸울 것”
왕원타오 상무부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더 잘못된 길로 간다면 중국은 끝까지 싸우겠다면서도 미국이 대화를 원한다면 적절한 시기에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된 질문에 “미국이 추가관세를 발표한 뒤 3대 미국 주식시장 지수가 하락했다”며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면서 “개별 국가가 관세 몽둥이를 휘두르며 국제 무역 질서를 어지럽히고 글로벌 산업망·공급망에 충격을 주고 있다”며 “협박·위협은 중국에 통하지 않고, 만약 미국이 잘못된 길로 계속 간다면 우리는 끝까지 함께 할 것(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왕 부장은 협상의 여지도 남겼다. “2024년 중·미 무역규모는 6882억달러(약 995조원)로 (무역전쟁 시작 전인) 2017년 대비 18% 증가했다”며 “중국과 미국의 각각의 성공은 서로에게 위협이 아닌 기회”라고 언급했다. 이어 “양국은 적당한 시기에 만날 수 있고, 양국의 팀 또한 조속히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中 외교예산 증액폭 국방보다 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날 중국의 올해 외교예산 증액폭이 국방비보다 크다며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와 대비된다고 보도했다.
중국 재정부는 전날 열린 양회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 보고에서 올해 외교예산을 지난해보다 8.4% 늘린 645억위안(약 12조8000억원)으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6.6%에서 증액폭을 늘린 것으로, 3년 연속 7.2% 늘린 국방비보다 증가율이 높았다.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는 전인대 개막식 정부업무보고에서 “독립·자주적인 평화 외교정책을 견지하고 평화 발전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이라면서 “국제적 공정성과 정의를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국제 사회의 다른 회원국들과 협력해 평등하고 질서 있는 다극적 세계와 포용적인 경제적 세계화를 촉진하고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의 개혁과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외교 중시 기조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대해 추가 관세 부과를 강행하고 각종 국제기구에서 발을 빼는 상황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외 원조 동결, 파리기후변화 협약·세계보건기구(WHO)·유엔 인권위원회 탈퇴 등 행정조치를 내놨다. 이는 중국이 자국 경제에 집중하면서 국제적 측면에서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SCMP는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