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관세 조치를 내고 있다. 여러 산업에 걸쳐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어 관세 부과 계획을 공식화했거나 신규 및 추가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공언만 했는데, 미국 내부에서조차 이런 조치가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미국이 그간 저렴한 수입품에 많이 의존했던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결국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는 소비자와 기업에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8일 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대표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는 지난달 말 ‘트럼프 경제정책의 지적인 기원’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전통적인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 접근방식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수입대체 산업화는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 자국 내 유치산업을 보호·육성하는 목표로 추진한다. 보통 정부는 관세 부과에 더해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이 경우 산업 간 불균형 발전을 유발하고 대규모 부채발행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하기 쉽다.
CFR은 “과거 미국 및 다른 나라가 이 같은 정책을 도입했을 때 정치적 논쟁이 커지거나 국가부도에 직면했다”며 “미국 같은 규모와 지위의 경제대국이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전례가 없어 이런 접근방식은 주요 교역국의 경기 침체와 세계 경제 둔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미국 기업연구소(AEI)는 최근 ‘트럼프의 무역적자 미신’을 발표하고 “미국의 경제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역적자 개선보다 내실 있는 경제정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AEI는 무역적자를 ‘해외 자본 유입과 미국 경제 성장의 결과물’로 봤다. 이 단체는 “외국인 투자 유입은 장기적으로 고용 창출, 기술혁신, 생산성 향상을 통해 미국 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며 “단기적 무역수지 개선이 아닌 장기 성장 전략과 미래 투자, 기술혁신 등을 통한 경제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역시 관세 정책이 장기적으로 기업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고 꼬집었다. PIIE는 “외부 경쟁 압력이 줄어들수록 기업의 기술 개발 및 생산성 향상 동기가 약화된다”며 “경제성장 둔화 및 노동시장 정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임금 정체 및 소비자 선택권 제한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인한 소비 위축 등을 유발해 결국 가계 생활수준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연구소는 우려했다.
싱크탱크뿐 아니라 미국 무역대표부(USTR) 출신 인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비판했다. 제니퍼 힐만 전 USTR 법률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수치를 선별적으로 꼽아 무역 불균형을 과장한다”며 “보호무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존 베로노 전 USTR 부대표도 “상호관세 부과가 실질적으로 교역대상국 무역장벽 제거가 아닌 미국 경제를 보호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며 “현 정책은 미국의 요새화, 즉 고립주의 접근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