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석방이 사실상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정치권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달 중순으로 예상됐던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고, 윤 대통령이 여권 내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에 따라 향후 정국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기 때문이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당내 조직을 정비하고 이슈 선점과 정책 개발 등 중도층 공략에 나서며 물밑 선거 준비를 해왔던 여야는 윤 대통령 석방이 헌재 탄핵 심판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권에서는 지지층 결집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기대감과 중도층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그간 조기대선 경선 방식이나 개헌 등 여러 의제를 두고 분열하던 야권은 재결집을 꾀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조기 대선 물밑 작업에 들어갔던 여권 잠룡들은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의 석방을 환영하며 화살을 외부로 돌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은 매우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결과”라면서 “이번 사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민주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그간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국론 분열을 초래한 공수처는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대통령이라고 해서 더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건강을 잘 챙기시면서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하실 수 있길 바란다”며 “혼란을 초래한 공수처는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법원이 법에 따라 판결한 것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며 공수처, 검찰, 헌법재판소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던 잠룡들이 일제히 윤 대통령의 귀환을 반긴 것은 앞으로 이들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란 관측과 무관하지 않다.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성 지지층이 결집하면 탄핵 인용이 되더라도 탄찬(탄핵 찬성)파 잠룡들이 당심을 얻기 쉽지 않아 경선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탄핵 찬성 목소리를 내온 여권 관계자는 “이제 완전히 윤 대통령 위주로 당이 돌아갈 텐데 그에 대한 반발이 힘들어진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실제 ‘탄핵 반대파’의 입지는 더 커질 전망이다. 대표적인 탄반(탄핵 반대)파이자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국무위원으로서 서울중앙지법의 윤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을 환영하며,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는 입장을 낸 데 이어 헌법재판소의 변론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줄기차게 윤 대통령 구속은 불법구속이니 구속 취소하라는 내 주장을 받아준 법원의 결정에 격하게 감사드린다”며 “탄핵도 당연히 기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시장은 전날 자신의 정치 플랫폼에서도 ‘석방이 홍 시장에게 악재가 될까 두렵다’는 한 지지자의 의견에 “악재 여부를 계산할 때가 아니다. 바른 결정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
당내에서는 ‘자유의 몸’이 된 윤 대통령이 강경한 목소리를 내며 영향력을 키워갈 경우 중도층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중도확장성이 있는 여권 잠룡들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만약 탄핵 인용이 될 경우에도 경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자기 뜻과 맞는 후보를 올리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기대선이 임박했다는 판단하에 경선 구도에 집중하던 야권은 다시 위기감을 갖고 윤 대통령 탄핵 완료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뭉치는 모양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견제에 힘을 쏟던 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계 잠룡들도 탄핵 완수에 집중하고 나섰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전날 “윤 대통령의 석방으로 우리 사회는 다시 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됐다. 이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시민들의 단결된 힘뿐”이라며 “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탄핵을 지켜내자”고 강조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내란 정범들은 구속 수사 중인데 정작 내란수괴는 석방됐다”며 “풀려난 수괴는 ‘법치’ 운운하며 나라를 더욱 분열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5당은 전날 서울 종로구 안국동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공동으로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한목소리를 냈다. 야5당 대표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야5당 일동은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취소 인용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야5당 대표는 위대한 국민과 함께 손잡고 빛의 혁명을 완수하겠다”며 윤 대통령 탄핵안 인용을 위해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5당 대표들은 이날 ‘비상시국 공동대응을 위한 원탁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