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 전공의들이 법정 상한 근로 시간인 주당 80시간 이상인 10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임신부임에도 불구하고 당직 근무와 연속 근무를 강제받는 등 수련 환경이 열악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근로자일 뿐 아니라 피교육생(수련생)인 전공의들이 법적 보호 아래 양질의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국회 입법조사처·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0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및 처우 개선을 주제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사직 전공의들은 2015년 '전공의 특별법'이 발의돼 국회를 통과했지만 열악한 수련환경이 바뀌지 않고 있다며 임신부인 전공의 등이 겪은 부조리한 사례들을 공개했다.
현재 경기도 소재의 한 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근무 중인 김은식 사직 전공의(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협의회장)는 "전공의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여러 부조리한 일을 강요받고 있다"면서 "세브란스 산부인과 전공의가 임신 초기부터 출산 수일 전까지 다른 전공의들과 마찬가지로 야간 당직근무와 36시간 연속 근무를 강요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전공의도 임신 초기부터 당직 근무를 했고 어느 날 퇴근 후 자택에서 복통을 느껴 응급실을 경유해 응급제왕 절개수술을 받았다"면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아를 1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다"면서 "후속 조치까지 끝내고 나서 태아에 죄책감이 들어 몇 시간을 내리 울었다"고 했다.
근로기준법 제 7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과 휴일에 근로시킬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74조에는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시간 외 근로가 금지돼 있다.
김 사직 전공의는 "전공의특별법이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고 위반해도 처벌이 경미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의 허점을 보완하고 개선해 전공의들이 법적 보호를 받으면서 양질의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김준영 사직 전공의(전 순천향대학교병원 전공의협의회장)는 "현행 전공의법은 주 80시간 이하 근무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실질적으로 주 120시간을 근무해 80시간 이하 근무는 전체 수련기간의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공의특별법에 따르면 전공의의 주당 근무시간은 4주 평균 80시간 이내로 제한되고 최대 연속 근무시간은 36시간 이내로 제한돼 있다.
김 사직 전공의는 "과중한 업무 경험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문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은 채우지 못한다"면서 "정부가 고시한 수련 교과내용의 절반 이상이 지켜지지 않고 있고, 전공의에게 독립적인 외래 진료 기회를 주는 곳도 손에 꼽고, 단독으로 집도할 기회를 주는 과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대로 된 업무 매뉴얼이 갖춰져 있지 않고 상급연차의 조언과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라면서 "(전공의들은)수련 기간 동안 지도전문의인 교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사용자 측 인사로 대부분 구성돼 있어 난장판 수련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고 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공의 특별법을 위반해도 처벌이 경미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전공의특별법 위반에 따른 벌칙은 고작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에 물리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박 비대위원장은 또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방향으로 수련 시간을 주당 80시간에서 64시간, 장기적으로 52시간으로까지 단축하고 연속 근무 시간을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유럽,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전공의 수련 시간을 주 64시간으로 줄이고 근로기준법 특례 업종에서 의료인을 삭제해 주 5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4시간 깨어있는 것 만으로도 환자 위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가장 개선이 시급한 게 36시간 연속 근무시간"이라면서 "주 80시간이 무색한 상황이다 보니 휴게 시간도 수련시간으로 인정해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최저 임금 수준인 전공의 급여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전공의 평균 급여는 397만 원(시급 1만1700원)에 불과하다"면서 "전공의를 더 이상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포괄임금제를 금지하고 실제 근로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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