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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받아 ‘상품권 깡’·쇼핑… 악덕 공익법인 ‘덜미’

기사입력 2025-03-10 20:10:00
기사수정 2025-03-10 22: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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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사후검증 강화 324곳 적발

이사장 개인계좌로 ‘상품권 깡’ 현금 유출
‘증여세 면제’ 임야, 공익에 사용않고 방치
고가 아파트도 구입… 출연자에 무상 임대
총장 자녀에게 업무용 자동차 내주기도
공익자금 사적 유용?우회 증여로 악용
증여세 250억 추징… “사후 관리도 지속”

공익법인 A는 법인 신용카드를 이용해 백화점 상품권 등을 수십억원어치 구입했다. 이렇게 구입한 상품권은 할인판매(이른바 ‘깡’) 방식으로 현금화해 이사장 개인계좌로 입금됐다. 공익법인의 자금이 이사장 개인에게 유출된 것. 법인의 불법 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귀금속점에서 고가의 귀금속을 구입한 뒤 이사장 일가가 사용하도록 했다. 또 임야를 출연받고 증여세를 면제받았으나, 3년 이상 방치하는 등 직접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하지도 않았다.

사진=뉴시스

기부금 등 공익자금을 쇼핑과 ‘상품권 깡’ 등에 사적 유용하거나 우회 증여 수단으로 악용한 공익법인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국세청은 전담 부서인 공익중소법인지원팀에서 공익법인의 세법상 의무 위반 여부를 검증한 결과 지난해 324개 법인을 적발해 증여세 등 250억원을 추징했다고 10일 밝혔다.

 

공익법인은 종교, 사회복지, 의료, 교육, 문화 등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익사업을 영위하는 비영리법인 등으로 종교단체, 사회복지법인, 의료법인, 학교·유치원, 장학재단 등이 포함된다. 세법에서는 공익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에 증여세를 면제하는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한편 이런 혜택이 취지대로 쓰이도록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국세청은 공익법인이 이 같은 의무로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사후검증을 강화한 결과 △공익자금을 ‘내 돈’처럼 사적유용하거나(3억3000만원 추징) △부당내부거래 등을 통해 공익자금을 우회증여하고 △법인 내 이사·임직원 취임 제한 의무를 위반한 사례를 적발했다.

 

공익법인B는 직원을 채용해 출연자의 가사일, 토지관리 등을 시키고, 업무용 승용차를 법인 관련 학교 총장의 자녀에게 무상으로 사용하게 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공익법인B에 대해 법인세 탈루액 등 수천만원을 추징했다.

 

공익법인 C는 기준시가 수백억원 상당의 토지를 장학사업에 사용하지 않고 출연자의 특수 관계법인에 사실상 무상으로 임대하고 그 외 출연받은 토지는 출연 이후 3년 이내 직접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하지 않고 방치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을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에게 무상 또는 저가로 임대하는 경우, 해당 재산을 공익목적 외에 사용한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매긴다”고 설명했다.

 

D공익법인은 기부금 등 출연받은 재산으로 고가 주상복합아파트를 구입하기도 했다. 공익법인이 아파트 등 부동산을 구입하는 경우 이를 임대 등 수익사업에 사용하고 발생하는 운용소득(임대료 등)을 공익목적으로 지출해야 하지만, D공익법인은 이를 출연자와 그 가족에게 무상으로 임대해 편익을 제공했다.

 

이 외에도 출연자의 집안이 이사장직을 세습하는 학교법인, 근무하지 않은 전 이사장(출연자의 증손자)에게 매월 1000만원 이상, 수년간 수억원의 허위 급여를 지급한 법인도 덜미가 잡혔다. 한 대기업 산하 사회복지재단은 계열사인 건설업체가 아파트 주민시설에 제공할 수억원 상당의 도서를 기부 명목으로 대신 제공하기도 했다.

 

이번 검증에서 가장 많은 추징액(236억9000만원)을 낸 사례는 기타 상속·증여세법상 의무 위반이다. 공익법인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이 임직원으로 일하거나 출연재산과 운용소득을 공익목적에 쓰지 않고 출연재산보고서 등을 제출하지 않은 경우다.

 

국세청은 공익자금을 사유화하거나 계열기업 지원에 이용하는 등 탈법적 행위를 하는 불성실 공익법인에 엄정 대응할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특히 회계 부정이나 사적 유용이 확인된 공익법인의 경우 3년 누적 사후관리를 지속해 의무사항 준수 여부를 철저히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