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사라진 대우그룹의 고(故) 김우중 회장이 한 이 말은 기업가 정신을 대표하는 명언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이후 흐릿해진 기업가 정신과 사라져 가는 국산 ‘올드카’에 매료돼 대우자동차 역사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젠지’(Z세대·1997∼2006년생)들이 있다. 김형준(21)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의 이야기다.

폭설이 쏟아지던 4일 서울 마포구 평화의공원에서 김 소장과 김동영 자문연구원(25)을 만났다. 김 소장은 대우차 시절인 1988년부터 지엠(GM)대우 시절인 2011년까지 생산되다 단종된 경형 해치백 차량 마티즈를 타고 왔다.
김 소장은 “지난해 8월 중고로 마티즈를 구입했는데 1세대 모델은 전 세계에서 약 200만대가 팔렸으며 아직 러시아 등 외국에서 인기가 많다”며 “해외에서는 대우차가 추억의 차가 아닌 현역”이라고 말했다.
대우차의 전성기 시절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대우차를 재발견한 계기가 있다.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된 이후 갈 곳이 없어진 콘셉트카 등을 보면서였다. 고등학생이었던 김 소장은 2021년 비영리 단체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를 만들어 대우차 역사 보존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대학교 자동차 관련 학과에도 진학했다.
김 소장은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는데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회사의 소중한 유산이 방치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며 “자동차 박물관 등 여기저기 보존해줄 곳을 찾았지만 반응이 없어 결국 단체를 시작해 자비로 자료와 자동차를 사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전 회장의 세계로 뻗어 나가자는 ‘세계경영’이라는 마인드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역시 비슷한 이유로 대우차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연구원 등의 역할을 맡고 희귀한 자료를 기증해주며 연구소 활동에 힘을 보탰다. 특히 김 연구원이 합류하면서부터 대우차 관계자들과 교류도 활발해졌다.
김 연구원은 대우차 부사장 출신으로 포드를 거쳐 애스턴 마틴 대표까지 지낸 자동차 업계의 거물 울리히 베츠에게 연락해 자문위원직 승낙을 받기도 했다. 1986년 르망 5만㎞ 내구테스트를 진행했던 박희태 전 한국모터스포츠클럽 회장도 자문위원으로 합류했다.

김 연구원은 “자동차를 좋아해서 블로그를 하다가 유독 대우차 관련 기록이 없어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차에 연구소의 존재를 알고 함께 역사 보존에 나서게 됐다”며 “대우차에 대한 애정이 컸던 베츠 전 부사장도 대우차의 헤리티지를 지키려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현재 보유한 자료는 차량 역사를 포함해 당시 생활사를 드러내는 카탈로그, 판촉물 자료 등까지 4000여점이다. 르망, 라세티 웨건, 라노스 등의 차량도 보유하고 있다. 인천도시역사관이 주관해 지난달까지 진행된 특별전 ‘인천자동차 40년-마이 카로의 여정’에 참여해 기획, 인터뷰, 자료 제공을 돕기도 했다.
연구소는 올해 하반기 르망을 타고 일본을 일주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이나 인천 부평에서 출발해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내려 도쿄타워를 찍고 돌아오는 경로다. 육로로만 왕복 1200㎞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현역’ 대우차가 달리고 있는 유라시아 횡단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연구소가 모은 자료로 자체 기획 전시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독일 올드카라고 하면 좋은 차를 탄다고 생각하는데 국산 올드카라고 하면 저런 걸 왜 타냐는 인식을 바꾸고 싶습니다. 올드카는 아무리 정비를 해도 장거리를 갈 수 없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고, 일본인들에게 (과거 수출됐던) 대우차를 다시 널리 알려보고 싶기도 합니다. 또한 아직도 대우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폴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대우차를 더 널리 알리고 잊히지 않게 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