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본업의 벽을 넘어 비금융 서비스로 발을 넓히고 있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음식을 배달시키고, 알뜰폰에 가입할 수 있게 되면서 은행이 예금과 대출만 팔던 시대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까진 적자 사업이지만, 비금융 사업을 통해 축적한 고객과 데이터가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알뜰폰 사업인 ‘우리원(WON)모바일’은 최근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다음 달 중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4월 알뜰폰 서비스를 은행 부수업무로 허용한 지 1년 만이다.

금융권에서 가장 먼저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 것은 KB국민은행이다. 2019년 혁신금융 서비스 지정을 통해 임시 허가를 받아 알뜰폰 사업자인 ‘리브모바일(리브엠)’을 선보였다. 지난달 말 기준 가입자 수는 43만명에 달한다.
국민은행이 포문을 연 알뜰폰 시장은 금융 영역과 비교적 궁합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계좌이체 등 통신요금 결제와 연계한 서비스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충성 고객을 키울 수 있어서다. 신한·하나은행도 직접 사업자를 내진 않았지만 수년 전부터 알뜰폰사업자와 제휴해 요금제를 운영해 왔다. 알뜰폰이 은행의 정식 부수업무로 인정되면서 이들 은행도 별다른 신고 절차 없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신한은행 음식주문 배달 앱 ‘땡겨요’도 이 같은 비금융 진출 사례다. 2020년 12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시작해서 서울·경기·인천을 비롯한 8개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고객층을 넓혀나가고 있다. 땡겨요는 타 배달앱과 차별화를 위해 ‘상생배달앱’임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배달앱과 입점업체 간 중개수수료 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2%의 낮은 중개수수료, 빠른 정산, 입점 수수료와 광고비가 없는 점을 내세워 입지를 넓혀가겠다는 전략이다.
이 사업도 한시적인 사업이었지만, 작년 12월 금융위원회가 부수업무에 대한 특례를 부여하기로 하면서 최대 1년 반 동안 관련 규정이 개정될 때까지 운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은행들의 비금융 사업들은 현재까지는 적자 사업이다. 리브엠의 경우 2019년 출범 당시 100만 고객 달성을 목표로 삼았지만 절반이 되지 않는 43만명을 유치하는 데 그쳤다. 최근 5년간 적자는 605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땡겨요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99만명으로 시장점유율은 1%대에 그친다.
금융권의 알뜰폰 사업은 규제가 복병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대기업의 알뜰폰 시장점유율을 60%로 제한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법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통신3사와 은행이 포함된다. 현재 통신3사 알뜰폰 자회사의 시장점유율은 47%, KB리브모바일과 에스원 등 대기업계열까지 더하면 51.8%라 우리은행이 고객을 늘리는 데 제약을 받을 전망이다.
그런데도 은행들이 비금융 분야로 업무 확장에 나서는 이유는 고객 데이터 확보와 사용자 경험 향상에 있다. 하나의 앱 내에서 금융·비금융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장기적으로 축적한 데이터는 향후 자산관리 서비스나 신용평가 등 금융사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또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 저하 원인으로 낮은 비이자이익 비중이 지적받는 가운데 비금융 서비스가 비이자이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심윤보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행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금융 기능에서 비금융 기능으로 확대됨에 따라 일본 대형은행들은 건강관리, 시니어케어, 정보은행 등 비금융 서비스를 적극 확장하고 있다”며 “국내 은행들도 미래 성장기반 확보를 위해 이런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