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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마사 그레이엄과 모리스 베자르가 선택한 천재 무용가 오하드 나하린 인터뷰

기사입력 2025-03-12 14:41:02
기사수정 2025-03-12 14: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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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드 나하린 ‘데카당스’ 공연 위해 방한
“춤 통해 그 감옥서 벗어날 수 있어” 강조

“우리는 왜 춤을 출까요. 왜냐하면 움직임이 곧 삶이기 때문입니다. 춤은 언어보다 더 깊게 무언가와 연결되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이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오픈스테이지에서 열린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현대무용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무용가 오하드 나하린이 그의 대표작 ‘데카당스’ 공연을 위해 방한했다. 작품 오전 리허설을 마치고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나하린은 “무용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춤을 통해 우리는 더 깨어 있고, 더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며 마치 잠언 같은 언어로 자신의 춤 세계를 설명했다.

 

나하린은 스물두 살 때 춤을 시작했지만 곧장 전설적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눈에 띄어 그녀의 무용단 주역으로 발탁된 무용가다. 또 다른 천재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발레단에서도 활동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그리고 바체바 무용단을 30여년 이상 이끌어오며 여러 화제작을 발표했다.

 

10일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자신의 작품 ‘데카당스’ 안무를 지도하고 있는 오하드 나하린. 세종문화회관 제공
10일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자신의 작품 ‘데카당스’ 안무를 지도하고 있는 오하드 나하린. 세종문화회관 제공

나하린은 특히 자신만의 독창적인 움직임 언어인 ‘가가(Gaga)’를 개발, 신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자신의 무용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연습실 거울을 커튼으로 감춘 채 춤추는 사람의 감각을 극대화하며 본능적이고 유연한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3월 14일부터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나하린이 서울시발레단을 통해 선보일 ‘데카당스’는 그의 대표작을 하나로 엮은 작품. 공연 때마다 다양한 변화가 이뤄지는데 이번 공연 역시 마찬가지다. “데카당스는 결코 같은 형태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진화하며, 매번 다른 버전이 존재합니다. 서울시발레단 무용수들을 보면서 두 개의 새로운 섹션을 추가했습니다. 그들의 존재감, 강렬함, 그리고 개성이 저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저는 무용수들이 자신만의 목소리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무용언어 ‘가가’에 대해 설명하던 나하린은 기자들에게 “인생이 힘들지 않냐”고 묻더니 ‘인생의 무게’를 언급했다. “인생은 무겁습니다. 우리의 존재, 우리가 겪는 고난의 무게는 때때로 감당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그 무게를 가볍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적 무용가 오하드 나하린이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발레단 공연에 올리는 자신의 대표작 ‘데카당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하린은 “‘가가’는 자신의 엔진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엔진이 강하면, 삶의 무게를 더 쉽게 감당할 수 있다.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춤을 춘다고 해서 삶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어려움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달라집니다. 강한 몸과 마음은 삶의 무게를 더 가볍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하린은 “‘가가’는 단순히 특정한 모양을 따라 하거나,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의 질감을 느끼고, 몸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며, 에너지의 가장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라며 “하나의 언어와 같다. 새로운 움직임의 길을 열고,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연습실 벽을 가득 채운 거울을 보며 자세를 바로잡는 무용계 관행에 대해서도 나하린은 “큰 실수”라고 단언했다. 그는 “거울은 진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이미지를 반사할 뿐”이라며 “좋은 무용수는 거울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느끼고, 본능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요리할 때 거울을 보면서 하나요.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 거울을 보면서 하나요. 춤도 마찬가지입니다. 춤은 반사(reflection)가 아니라, 인식(awareness)입니다.”

 

‘춤은 나의 언어’라는 나하린에게 ‘춤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고 묻자 돌아온 답은 ‘자유’였다. 

 

세계적 무용가 오하드 나하린. 뉴스1
세계적 무용가 오하드 나하린이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발레단 공연에 올리는 자신의 대표작 ‘데카당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적 무용가 오하드 나하린. 뉴시스

“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때론 몸이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춤을 통해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두 명의 무용수가 똑같은 안무를 추고 있습니다. 한 무용수의 춤은 저를 울게 하고, 저는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반면, 다른 한 명의 무용수는 저를 졸리게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요. 왜 나는 같은 춤을 보고 있는데, 한 명은 나를 감동하게 하고, 다른 한 명은 나를 지루하게 만드는 걸까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움직임의 질(Quality of Movement)이 제가 계속해서 본질적으로 탐구하고 발견하며 추구하고자 하는 춤을 향한 탐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