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앞두고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로 갈라진 광장의 여론을 수습해야 할 정치권은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며 갈등 수위를 끌어올리는 양상이다.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지 100일째인 12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파면을 촉구하며 ‘거리 위 투쟁’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62명은 헌재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 각하·기각을 촉구하는 24시간 릴레이 시위에 나섰다. 12·3 계엄 사태 이전에도 거대 야당의 입법·예산 강행 통과와 그에 맞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갈등 정국이 계속됐지만, 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은 좌·우 강경 세력의 목소리를 키우면서 극단적 ‘진영 정치’로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민주화 역사가 짧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 양극화를 연구해온 게이브리얼 렌즈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치 양극화 현상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이 더 심각할 수 있겠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소추 등의 보도를 접했다는 렌즈 교수는 세계일보가 창간 36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1월31일∼2월1일, 성인남녀 1004명 대상)에서 응답자 86%가 한국 정치에 ‘양극화되어 있다’고 응답했다는 결과를 전하자 “수치가 매우 높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고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렌즈 교수는 최근 사이언스지에 실린 민주주의 회복과 정치적 양극화 해소를 위한 연구보고서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상대 진영이 먼저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믿기 때문에 민주주의 절차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전복의 딜레마(subversion dilemma)’ 이론을 소개하며 학계 및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21년 7월 UC버클리대와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존스홉킨스대 등의 30여명의 연구자는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개입(treatment)’ 방법 25개를 제안받아 2년 넘게 연구를 진행했는데, 렌즈 교수 연구팀이 제시한 ‘정당 간 오해 해소 전략’이 개입 방법 중 가장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 간 오해 해소 전략을 통해 상대 정당이 반(反)민주적이라는 인식이 감소했고, 상대 정당과의 협력 의사가 증가하는 긍정적 변화가 가장 높았다.
렌즈 교수는 “상대 진영이 먼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믿으면 자신들도 민주주의 절차를 무너뜨려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정치지도자들이 상대 진영도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양극화된 상황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탄핵 정국의 갈등 완화를 위한 조언으로 “반대 진영도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