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시 조기대선을 전제로 한 가상 양자 대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오차범위 밖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여권이 옹호하거나 반긴 ‘윤 대통령 석방’ 이후에도 여권 후보들이 밀리는 결과다. 보수 진영 내 ‘지지층 결집’이라는 득보다 ‘중도층 이탈’로 인한 실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22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12일 발표한 가상 양자 대결 결과, 이 대표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 여권 ‘잠룡’을 상대로 모두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이 대표(47.2%)는 김 장관(34.0%)과 양자 대결에서 13.2%포인트 앞섰다. 이 대표와 홍 시장은 46.8%대 24.9%, 이 대표와 오 시장은 47.9%대 23.8%로 20%포인트 이상 격차였다. (응답률은 5.2%,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권 후보만 떼어놓고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는 김 장관이 24.9%로 가장 높았다. 이어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9.4%), 한동훈 전 대표(8.2%), 오 시장(6.4%), 홍 시장(5.3%), 안철수 의원(3.1%) 순이었다. 오차범위 밖에서 범여권 1위를 차지한 김 장관조차 이 대표와 10%포인트 이상 뒤처진 셈이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재명 1강’ 현상이 드러난다. 지난달 26∼28일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1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양자 대결에서도 여권 ‘잠룡’들은 이 대표에게 오차범위 밖 열세를 보였다.
1월 말∼2월 초의 설 연휴 전후 여론조사에서는 오 시장과 홍 시장 등의 ‘잠룡’들이 이 대표와 오차범위 내 각축이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여권 잠룡들이 이 대표 대비 부진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는 현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길리서치 ‘이재명-김문수 양자 대결’에서 자신을 중도라고 응답한 사람의 55.7%가 이 대표를 선택했지만, 김 장관은 25.4%에 그쳤다. 또 진보층 84.9%가 이 대표를 지지했지만, 보수층은 61.8%가 김 장관을 택했다. 보수층에서는 15.9%가 이 대표를, 진보층에서는 6.5%가 김 장관을 지지했다. 이 대표가 진보층의 압도적인 지지와 중도층 과반의 선택을 받는 가운데, ‘범여권’ 1위 후보인 김 장관은 ‘보수 진영’에서도 60%대의 지지에 그치면서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가 ‘진보 진영’에서 80%대 지지를 받는 것과 대비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 석방이 국민의힘에게는 결정타이자 자충수”라며 “오히려 중도층이 이 대표 쪽으로 똘똘 뭉치고 있고, 여당 잠룡들도 콘크리트 지지층과 중도층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중도층 표심을 얻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간담회를 열고 대학등록금 대비 장학금 비율을 현행 60%에서 70%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아르바이트로 연 소득 500만원을 넘기는 경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되는 제도를 손보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중도’ 내지 ‘중도보수’ 성향이 강한 2030 청년층을 겨냥한 정책이다. ‘조기대선’ 가능성에 손사래 치고 윤 대통령 석방 후 면담에도 나선 당 지도부지만, 대선 가능성 자체는 외면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은 청년의 편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윤 대통령 석방 후 당내 친윤(친윤석열)계 목소리가 커지는 등 윤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실제 지지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당 지도부는 당 차원의 ‘장외 투쟁’에 선을 긋지만 이날부터 헌법재판소 앞에서 벌어진 탄핵 각하·기각 릴레이 시위에는 당 소속 의원 62명이 참여하기로 했다. 전체 의원 108명의 절반 이상이다. 나경원 의원 주도로 모인 국민의힘 의원 82명은 헌재에 윤 대통령 탄핵심판 각하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의원회관에서는 탄핵반대 집회에서 나오는 ‘국민저항권’을 주제로 한 관련 세미나가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 주재로 열렸다.

이러한 움직임을 놓고 당내에서는 쓴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인사들이 주축이다. 안철수 의원은 “(윤 대통령 석방을) 계기로 일부 우리 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이 헌재를 거세게 압박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모습”이라고 했고, 김상욱 의원은 “당에서 공식적으로 (장외 투쟁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라며 “정치가 거리로 나가서 자꾸 선동하는 모습은 품위 있는 또 책임감 있는 모습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