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공세에 중국이 1기 때보다 훨씬 빠르고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누적 104%의 추가 관세를 발표하자 중국은 즉각 84%의 보복관세를 단행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에 착수했다. 트럼프 1기 당시엔 대응이 수주 뒤에 나왔지만 이번에는 발표 직후 조치가 이뤄지면서 관세 전쟁은 초반부터 격한 정면충돌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각 관세 맞대응 나선 중국
9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상호관세가 발효되면서 중국산 제품에 적용되는 총 추가 관세는 104%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펜타닐 유입 차단 미협조 명분으로 2월과 3월 각각 10%씩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이에 중국은 미국산 석탄·LNG와 원유·농기계, 닭고기·밀 등 특정 품목에 대한 추가 관세를 발표하며 맞섰다. 그러자 미국은 지난 2일 34%의 상호관세를 더한다고 발표했는데,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고 이틀 후인 4일 34%의 보복관세를 동일하게 미국산 전 제품에 적용한다고 밝힌 데 이어 WTO에 정식으로 분쟁협의를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보복관세를 취소하지 않으면 관세 50%를 추가로 부과한다고 경고했고, 결국 현실화했다. 중국은 이마저 즉각 맞받아쳤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이날 “10일 낮 12시1분(현지시간)을 기점으로 부과하는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34%에서 84%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50% 추가 관세 부과를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중국은 관세에 더해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통해 미국 반도체·배터리 산업을 겨냥했고, 관영매체가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국 대응의 불합리성을 집중 부각하는 국제 여론전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쉴드 AI와 시에라 네바다 등 미국 군수기업 6개를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추가하는 한편 아메리칸 포토닉스(렌즈 제조), 노보텍(바이오), 크라토스(드론) 등 미국 12개 기업에 대해 이중용도 물자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중국 국무원은 이날 2만8000자 분량의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몇 가지 문제에 관한 중국의 입장’ 백서를 발표하고 미국의 관세 부과에 반발하며 양국이 무역 불균형 상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국 상무부 관계자는 무역적자로 고통받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중·미 상품 무역 격차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낳은 필연적 결과이자 양국 비교우위와 국제 분업 구조가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중국은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는 신호를 내비쳤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평등하고 존중하며 호혜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버틸 수 있다” 판단한 듯
관세전쟁의 충격을 단기적으로 견디는 힘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 구조가 단기적 혼란 속에서도 전략적 일관성을 유지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국가 주도 시스템의 탄력성도 거론된다. 중국은 기업·언론도 당의 통제하에 있어 정부 방침에 따라 일사불란한 정책 조율이 가능하다. 반면 미국은 선거와 여론에 따라 관세정책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중간선거가 다가오면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책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날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핵심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전날부터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주변공작회의에 참석해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한다는 외교 방침을 천명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주변국 운명 공동체 구축에 집중하고, 주변국 업무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를 다루는 최고위급 회의가 열린 것은 12년 만으로, 시 주석의 연설이 공개된 것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한 이후 처음이다. 이 같은 주변국 관리 강화는 미국이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을 날린 가운데 중국의 우군 확보 행보라는 평가가 나오며, 한·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지도부가 이르면 이날 회동해 미국 관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은 정치·제도·경제적 구조 전반에서 이번 무역전쟁을 ‘버틸 수 있는 게임’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무역전쟁이 길어질수록 중국 역시 맷집을 시험받는 상황에서 치킨게임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