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합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조기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고 제안한 지 불과 사흘 만인 9일, 개헌 제안을 사실상 철회했다. 우 의장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한 제 정당의 합의로 대선 이후 본격 논의를 이어가자”면서 ‘대선·개헌 동시투표’ 입장을 접었다.
이날 당 대표직에서 사퇴한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개헌 추진에 분명히 선을 그은 데다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조기대선 국면에서 개헌 합의 등이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직후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자며 터져나온 개헌 논의가 사실상 물건너가는 흐름이다.
우 의장은 입장문에서 “위헌·불법 비상계엄 단죄에 당력을 모아온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이 당장은 개헌 논의보다 정국 수습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개헌이 국회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이라면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당 간 개헌 합의가 어려운 상황임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셈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국민의힘과 함께 개헌을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분위기다. 여기에 전날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으로 윤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추천하면서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당 지도부의 기조에도 힘이 실렸다. 당내 일각에서 ‘민주당이 왜 개헌 논의도 못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한 권한대행의 전날 인사 등을 볼 때 개헌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에서다. 당내 한 중진의원은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포함해 아직도 윤석열이 인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힘과 개헌 논의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의원은 “내란 세력인 국민의힘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개헌을 논의하고, 합의해서 투표를 한다는 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냐”고 우려했다.

이 전 대표는 우 의장이 대선·개헌 동시투표를 제안한 이튿날 ‘4년 중임제’ 등을 언급하며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최고위원 등이 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는 최고위 공개 발언에서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헌법 전문에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 관련 문구를 수록하고, 대통령의 계엄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원포인트 개헌’ 가능성만 언급한 바 있다. 앞서 이 전 대표가 우 의장과 만남 등을 통해 개헌 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입장 변화가 다소 있었던 셈이다. 우 의장이 이날 입장문에서 “국회의장의 제안에 선행됐던 국회 원내 각 정당 지도부와 공감대에 변수가 발생했다”고 언급한 것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거세게 비난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직하게 개헌을 추진하던 국회의장조차도 버텨내지 못하는 모습은 이 대표 뜻에 반하는 의견에 대해선 당내 논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1인 독재 민주당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권 위원장은 “국민의힘은 시민사회·국민과 함께 변함없이 개헌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