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과거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권성동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정작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이 ‘사저 정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징계’나 ‘탈당’ 요구조차 나오지 않는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탈당 시도라도 했던 자유한국당 지도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사저를 다녀온 친윤석열(친윤)계의 전언이 쏟아져 나온다. 당내에선 수직적 당·정 관계를 청산하지 못해 ‘총선 참패’를 맞이했던 국민의힘이 또다시 ‘패배의 신호’를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 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다르다. 국민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위에 반성과 성찰을 거쳐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앞서 ‘윤석열·이재명 동반청산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반성’과 달리 당내에서는 윤 전 대통령에게서 거리두려는 움직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일까지 회의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파면당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징계나 출당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선을 앞두고 강성 보수층을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윤 전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망설이는 동안 윤 전 대통령은 나경원·윤상현·이철우 등 친윤계 인사들을 불러들여 ‘전언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11일 서울 서초동 사저로 복귀한 뒤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모습이 드러난 발언이다.
당내에선 ‘윤 전 대통령의 행보와 절연하지 않는 것은 총선 참패를 반복하는 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김건희 명품백 수수 논란’, ‘이종섭 주호주대사 임명 강행’, ‘의대정원 증원 혼선’ 등 대통령실발 논란에 대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중도층의 외면 속에 ‘108석’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총선 패배 후 국민의힘은 백서에서 해당 논란을 놓고 “당은 정부 기조를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건강하고 생산적인 긴장감이 조성되지 못했다”고 명시했다.
민심은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10일 전국 유권자 3000명을 전화면접조사한 결과,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이 ‘잘한 결정’(67%)이라고 답한 여론이 ‘잘못한 결정’(28%) 응답을 압도했다.

정작 당내에서는 다시 윤 전 대통령이 경선을 좌지우지하는 쟁점으로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흘러나온다.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는 유승민 전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대선·경선 불출마를 잇달아 선언하면서 경선 레이스가 보수성향이 짙은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 경쟁 기류로 바뀌면서다. 이는 결국 ‘탄핵’을 둘러싼 찬반 쟁점으로 경선이 치러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윤 전 대통령이 ‘사저 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점도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결국 당내에선 ‘탄핵의 강’으로 돌아가는 것이냐는 우려가 쏟아진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번 경선이 ‘탄핵 찬반’에 대한 쟁점으로 흘러가게 되면 우리는 필패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을 벗어나지 못하면 중도층이 우리 당 비전과 후보들에 관심 갖지 않을 것이고, 결국 우리 후보만 본선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