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공관들의 허술한 비자 심사와 법무부의 통합사증정보시스템 미비로 인해 불법체류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의 입국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감사원 지적이 15일 나왔다.
한국을 중국 영토로 표시하거나, 스페인 식민지로 잘못 소개한 현지 교과서에 대해 재외공관들이 시정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허위 서류 제출해도 ‘무사통과’
감사원에 따르면 베트남 주호찌민총영사관에서 일반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불법체류자는 지난해 2월 기준 515명에 달했다.
이 중 20%인 113명을 무작위로 선별해 조사한 결과, 19명이 비자 신청 과정에서 중복된 계좌정보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은행명과 계좌번호가 동일했지만 영사관은 이를 걸러내지 못하고 비자를 발급했다.
법무부의 사증정보시스템 설계 미비도 사태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비자 신청자가 제출한 계좌정보를 입력하면 위·변조 또는 중복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능이 시스템에 포함됐더라면 이런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국가의 주다낭총영사관은 직원들이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해 동일 계좌를 제출한 41명에 대해 비자 발급을 불허했다. 이는 주호찌민총영사관의 부실한 업무와 대조된다.
허위 서류를 제출한 현지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공관도 있었다.
주몽골대사관은 2022년 9월, 국내 기관 명의 초청장과 사업자등록증, 행사 방문 서류 등을 제출한 현지인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그러나 초청장을 보냈다는 기관은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대사관은 이를 확인하지 않고 비자를 발급했으며, 이 같은 방식으로 이듬해 10월까지 총 8건의 허술한 비자 발급이 이루어졌다.
주베트남대사관도 2023년 5월, 한국 건축 자재업체 명의 초청장과 일정표, 귀국보장각서를 제출한 현지인 2명에게 비자 심사를 진행했으나, 비자 발급 하루 전 해당 업체가 폐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무사히 입국한 후, 지난해 2월 기준 불법체류자로 확인됐다.
◆생체정보 관리도 미비
여권 위·변조에 대비한 생체정보 관리 역시 부실했다. 법무부가 2022년 조사한 결과 2021년 기준 177개 재외공관 중 주레바논대사관 등 33곳이 여권 사진과 같은 생체정보 입력률 0%를 보였다.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등 13곳의 입력률은 50% 이하인 점이 확인되는 등 144개 공관에서 총 1만6902명의 생체정보를 입력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법무부는 재외공관들이 생체정보를 입력하도록 외교부에 협조를 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감사원이 재점검해보니 지난해 기준 재외공관 181곳 중 주이란대사관 등 9곳은 여전히 입력하지 않고 있었다. 주코트디부아르대사관 등 16곳은 입력률 50% 이하였다. 총 167곳 재외공관에서 4만2431명의 생체정보를 입력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조사 때 생체정보를 입력하지 않아 지적받은 주멕시코대사관 등 9곳과 입력률 50% 이하인 주스페인대사관 등 6곳은 감사원 감사에서도 여전히 개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공관 직원들이 생체정보를 입력하는 데 필요한 여권 판독기의 용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상 애물단지로 전락한 판독기는 외교부로 고스란히 반납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에선 생체정보 입력 기능이 탑재된 새 기기를 보급받지 못했고, 일부는 고장으로 인해 정보 입력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법무부는 2021∼2024년 여권 사진 불량으로 169개국 5만4750명에 대한 생체정보를 감식하지 못했는데도 별도 조치 없이 비자를 발급했다.
◆韓을 中 영토로 표기해도 ‘뒷짐’
일부 재외공관은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수록한 현지 교과서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아 감사 지적 대상에 올랐다. 이를테면 영국의 일부 교과서는 ‘한국은 암페타민(마약의 일종) 생산국’, ‘4세기경 일본군이 한국 남부 임나에 식민지 건설’ 등 내용이 담겼다. 주영국대사관은 그러나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의 요청을 받고도 이들 교과서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아 해당 교과서가 여전히 학생들에게 읽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오스의 교과서는 ‘남한 인구의 63%는 농민’, ‘한국은 중국 문자와 유사한 새 문자를 발명해 사용 중’, ‘러시아제국이 한국을 점령해 시장을 확대함’ 등 허위사실을 담고 있었다. 이에 주라오스대사관은 오류 시정을 요청하고, 관련 내용이 개선됐는지를 확인해 한중연에 회신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헝가리 교과서에는 아편전쟁 당시 지도에서 한반도를 중국으로 표시하거나, ‘한반도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이에 대한 조치도 미흡했다.
감사원은 이들 지적사항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 및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외교부와 법무부에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