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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대법원장 탄핵’ 위협, 당장 접는게 답이다 [논설실의 관점]

기사입력 2025-05-04 19:00:00
기사수정 2025-05-04 21: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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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의총에서 탄핵 발의 결정 보류
명분 부족해 국민적 역풍 우려한듯
파기 환송심 재판부 압박도 멈춰야

더불어민주당은 4일 오후 국회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조희대 대법원장의 탄핵소추안 발의 여부 결정을 보류했다. 노종면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탄핵 추진 의결은 보류했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당장 탄핵을 결정한 것처럼 얘기하기에는 정치적인 부담이 클뿐 아니라 국민 여론을 획득해야 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상당 부분 제기됐다”며 보류 배경을 설명했다. 조 대법원장 탄핵을 밀어붙이기에 명분이 부족하다고 자인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앞서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초선 70명 명의로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을 요구했다. 이들은 “조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의 무리한 절차와 편향된 판단은 국민 법 감정과 상식에 정면 배치된다”며 “즉각 조 대법원장 탄핵 소추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인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할 수 없다. 이게 마지막(탄핵 소추 절차 진행)이길”이라고 적었다. 이재명 대선 후보도 “당이 국민의 뜻에 맞게 적의(適宜·알맞고 마땅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당 지도부도 조 대법원장 탄핵 움직임을 사실상 용인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런 기류가 의총에서 뒤집힌 것은 국민적 역풍를 우려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민주당은 이미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 후보와 관련한 재판을 모두 중지시키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착수한 상태다. 자칫 ‘사법 불복’으로 비칠 수 있는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대통합을 강조하던 민주당 모습과는 딴판이다. 조 대법원장 탄핵과는 별도로 청문회와 국정조사, 특검도 촉구했다. 후속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을 압박하는 성명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김준혁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 “진짜 개싸움이 시작됐다”며 “개싸움 할 때는 룰 따지는 거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도 넘은 사법부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물론 사법부의 이 대표에 대한 재판 속도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기는 하다.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의 항소심 무죄를 파기한 다음날인 2일 사건기록을 서울고법으로 송달했고, 서울고법은 곧바로 형사 7부에 배당했다. 파기환송심은 오는 15일 첫 공판을 연다. 이례적이며, 민주당 진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행보다. 일부 법관들 사이에서 “더 이상 법원의 재판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심각한 후과를 남길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민주당이 대법원장 탄핵 운운하며 사법부 흔들기에 나서는 모습은 이성적인 대응이라 할 수 없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어김없이 재판부를 겁박해 왔다. 민주당의 공세는 사법 방해로 비칠 수 밖에 없으며 삼권분립 원칙에도 위배되는 일이다. 사법부를 정치권력의 시녀 정도로 여기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초유의 대법원장 탄핵을 밀어붙이고, 청문회·국정조사 등에 착수할 경우 사법과 정치의 갈등은 한층 격화될 게 뻔하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국이 더욱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양측의 충돌은 헌정 질서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국민 갈등이 증폭되고 국가신인도 추락도 불가피하다. 역대 정치인 관련 재판이 이렇게 혼탁해진 경우를 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을 자처한다면 이쯤에서 자제력을 발휘, 조 대법원장 탄핵 논의는 보류가 아니라 접어야 마땅하다. 정치의 파국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