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굶주림과 외로움 속에서 다시 북쪽을 택하기로 결심하고 마을버스를 훔쳐 통일대교를 향해 달린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의도라기보다 남한 정착 실패가 불러온 비극”으로 바라봤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을버스를 몰고 통일대교로 돌진하며 월북을 시도한 30대 탈북민 A씨가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전날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제1형사부는 국가보안법과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정치적 목적보다 생존의 절박함이 우선된 행동”이라며 이같이 판결했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1일 새벽에 벌어졌다. 파주시 문산읍의 한 차고지에서 차키가 꽂힌 마을버스를 훔친 A씨는 통일대교로 향했고, 남문 초소 바리케이드를 들이받고 군사통제구역으로 진입해 약 900m를 더 달렸다. 그러나 북문 초소 앞에서 군의 제지에 가로막혀 현장에서 체포됐다.
A씨는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이후 일용직 노동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2018년 다리 부상 이후 건강 악화와 생계난이 겹치면서 극심한 빈곤에 빠졌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기초생활수급을 받던 그는 고립감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속에 북한 복귀를 고민하게 됐다.
그는 재판에서 “북한에선 하루 이상 굶어본 적이 없는데 남한에선 일주일을 굶었다”며, “돈이 없으면 죽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월북을 결심하기 직전인 2024년 9월, A씨는 서울 관악구 고시원에서 퇴거를 통보받았고, 주민센터를 찾아 긴급생계비를 문의하던 중 담당 공무원에게 “차량을 몰고 월북하면 북한에서 체제 비판 후 용서받고 다시 살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 사실도 밝혀졌다.
재판부는 “북한을 찬양하거나 동조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며 “북한이탈주민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현실을 드러낸 사례”라고 판단했다. 이어 “통일을 준비하는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