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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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벌목

입력 : 2025-12-01 23:08:46
수정 : 2025-12-01 23: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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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미화

새가 손목을 쪼는 꿈은 따스했다

 

붉은 포클레인이 숲을 무너뜨리는 대낮을 보고 난 후

 

몸 상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해몽이 떠올랐다

새가 손목을 더 깊이 쪼아댔다

 

새들은 내려앉을 곳이 없어지고

 

저린 손목에는 공중의 노래가 알처럼 모였다

 

향기로운 목질은 사라지고

생목 냄새가 올라왔지만

 

부러진 나무 대신

손목을 내놓았으니

 

새들이 사라진 자리가 욱신거리는 저녁

 

내 몸을 따라 꿈이 떠돌았다 새는 나무를 향하다가

곧장 부리를 내리꽂았다

나무의 몸을 생각한다. 흰 종이에 하잘것없는 몇 줄의 문장을 끄적이면서, 잡동사니를 한껏 떠받치고 있는 책상 위에 이리저리 손을 놀리면서…. 나무의 부서진 몸을 생각한다. 붉은 포클레인은 무수히 많은 숲을 무너뜨렸겠구나. 무수히 많은 몸을 죽였겠구나. 새삼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한 장 종이도 구길 수가 없다. 구기는 순간, 누군가 오래 참았던 신음을 쏟아낼 것만 같다.

 

시 속 사람은 어째서 새가 손목을 쪼는 꿈을 꾸었을까. 하필 손목을? 그 손으로 밥도 먹고 일도 하고, 그리고 시도 써야 할 텐데. 새가 쪼고 간 손목에는 공중의 노래가 알처럼 모였다고 한다. 아니, 일부러 불러 모았다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부러진 나무를 대신해 공중의 길 잃은 것들, 가엾은 것들을 저린 손목에, 그 손목으로 써 내리는 시에 기꺼이 품어 안으려는 꿈. 그런 꿈은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따스하겠다.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