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멈출 수가 없어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걱정이 지나치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몸이 잠시 불편하다고 모두 큰 병은 아니며 한 번의 작은 실수로 직장을 잃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도 마음은 “혹시 모르잖아”라며 불길한 상상을 계속 떠올린다. 과하다는 걸 아는데도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걱정 연구로 잘 알려진 심리학자 토머스 보코벡은 걱정이 두려운 장면과 감정을 회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고 했다. 다가올 위험을 생생하게 느끼는 대신 원인과 대책을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은 잠시나마 안심할 수 있다. 걱정이 일종의 부적처럼 활용되는 셈이다. 하지만 “미리 걱정해야 대비할 수 있어. 걱정을 멈추면 정말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몰라”라는 믿음 때문에 걱정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위험해질 거라고 느껴져서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걱정이 두려움을 잠시 덮어두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되풀이된다.
임상심리학자 에이드리언 웰스는 걱정이 지속되는 데에는 ‘걱정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관한 믿음’, 즉 메타인지적 신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걱정해야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고 믿으면 걱정을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전략처럼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걱정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망가지고 말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걱정이 자신을 보호한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파괴할 거라는 불안에 빠지고 만다. 결국 걱정 자체를 걱정하는 ‘메타걱정’이 더해지면서 공포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마음도 걱정에 매달리게 만든다. 심리학자 미셸 뒤가와 마크 프리스톤은 범불안장애를 일으키는 핵심 요인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 부족’을 꼽았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를 단순히 모호한 것이 아니라 위험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면 마음속에서 이런 규칙이 발동한다.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 걱정을 멈추면 안 된다. 결론이 날 때까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불안한 마음은 빈칸을 남겨두지 않고 재앙적 가능성으로 채워버린다. 최악을 예상하면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걱정은 더욱 커지고 만다.
이처럼 불확실성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마음에는 위험은 크게 보고, 그것을 감당할 자신의 능력은 작게 보는 경향이 깔려 있다.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인 정신과 의사 에런 벡은 불안한 사람일수록 나쁜 일이 벌어질 가능성과 그 결과의 끔찍함은 크게 보고, 자신의 대처 능력과 주변에서 도움받을 가능성은 작게 평가한다고 했다. “걱정했던 일이 생기면 나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어”라는 불안이 생기고,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걱정하게 된다. 위험의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아무리 오래 생각하더라도 걱정에서는 끝내 헤어나지 못한다.
걱정을 떨칠 수 없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면 된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로 돌아가야 한다.
걱정을 멈추는 힘은 미지에 직면했을 때 모든 답을 알아내거나 어떤 위험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안심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모르는 채로, 조금은 불안한 채로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낼 수 있다는 경험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