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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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국인 관광객에 운전 허용 문제 많다”

관광객 유치 증진 취지 불구 교통법규·운전문화 달라
주민들 “교통사고 급증 우려”… 각계 “면밀한 검토 필요”
제주도에서 중국인들의 렌터카 운전을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제주도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국 면허증만 있으면 렌터카 등 차량 운전을 허용하는 특례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제주도에 따르면 정부는 1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의를 열고 ‘제주특별자치도 5단계 제도개선 과제’를 심의 의결했다. 제주도가 요청한 74건 중 40건을 수용한 가운데 ‘단기체류 외국(중국인 등) 관광객 운전허용 특례 신설’이 눈에 띈다. 자국 운전면허증이 있는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도에 한해 유효기간 90일의 임시 운전증명서를 발급받아 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은 ‘국제도로교통협약’을 맺지 않아 중국 운전면허 소지자 중 90일 미만의 단기 체류자는 국내에서 운전할 수 없다. 특례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인들이 제주에서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자국 면허 확인이나 신청·발급 절차 등은 대통령령으로 규정해 제주지방경찰청이 맡게 된다. 국제자유도시 경쟁력을 강화해 중국인 개별 관광객 유치를 증진하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는 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인데도 공청회 등 광범위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추진되고 있어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최근 관광객 급증으로 내국인 렌터카 차량 사고 사상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외국인들에게 운전이 허용되면 사고가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통사고 상존 위험과 인명 피해에 따른 법 적용, 피해 보상을 둘러싼 외교적 문제 등 손실이 더 많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제주지역 렌터카 교통사고는 2010년 233건(사망 6명·부상 449명), 2011년 237건(사망 9명·부상 418명), 2012년 334건(사망 9명·부상 560명)으로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는 모두 394건이 발생해 14명이 사망하고 638명이 부상했다. 최근 2년 동안 렌터카 교통사고가 66%나 급증한 셈이다.

실제 지난해 4월 서귀포시 남원읍 5·16도로를 운행하던 렌터카 차량이 전복돼 가족 여행에 나선 일가족 6명 중 4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올 들어서도 1월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교차로에서 30대 렌터카 운전자가 신호등을 들이받아 숨졌고, 같은 날 서귀포시 보목마을에서 40대 운전자가 몰던 렌터카가 다리 밑으로 추락해 일가족 4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렌터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의 렌터카 교통사고 증가는 개별자유관광 이용객 급증과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상황이 결부돼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도로 신설과 확장, 한라산 지형 영향에 따른 커브길이나 고갯길, 야생동물 출몰 등 제주의 독특한 도로 특성도 초행길 운전자에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국인 관광객 운전 허용은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은 난폭운전으로 매일 4분에 한번꼴로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하루 평균 160명이 사망하는 ‘교통사고 대국’이란 오명을 안고 있어 제주에서 이들의 운전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제주지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운전문화가 후진적이고 우리와 교통법규 체계가 다른 중국인들에게 운전을 허용하는 특례는 면밀한 검토와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내국인도 운전면허를 딴 지 1년만 지나면 자동차를 대여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현행 법도 교통선진국처럼 좀 더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비게이션은 단지 길 안내에 불과할 뿐인데 외국(중국인) 관광객에게 임시운전을 허용하려면 외국어 교통안내 및 안전시설 확충, 안전교육 등 인프라를 갖추는 비용이 더 커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의 운전 허용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렌터카 업체도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 렌터카 업체 관계자는 “자기차량손해보험을 가입한다 해도 사고 발생 시 보상 처리도 골치 아프고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선뜻 대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의회 현정화 의원은 “도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인데도 도민사회의 의견 수렴 없이 추진하는 것은 문제”라며 “면밀한 재검토와 함께 도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집행부에 주문했다.

현 의원은 외국인 관광객(중화권) 대상으로 실시한 ‘개별 여행객의 이동 및 여행 편의를 위해 개선해야 할 사항’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외국인 자국 운전면허증 허용은 20.6%에 불과하고, 대중교통 외국어 안내 강화(74.6%)와 시외버스 행선지 식별 번호표 부착(54.0%) 등을 가장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외국인 운전 허용보다는 대중교통 편의 증진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일부 무질서한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초질서 위반행위를 집중단속하고 있는데 운전이 허용된다면 교통단속에 과부하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단기체류 관광객 운전허용 특례는 40일간의 입법예고와 관계부처인 외교부·경찰청 협의,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5월 중 특별법 개정안에 포함해 국회에 제출된다. 제주도 관계자는 “경찰청이 애초에는 교통사고 위험 등으로 부정적이었다가 제주도에 한해 특례를 적용하는 부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 제도 개선 과제에 포함됐다”며 “다음주 중 입법예고 기간에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40개 과제에 대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