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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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아, 운동장… 교실 보이지 이제 가자”

‘텅 빈 교실, 주인 잃은 책걸상, 하얀 국화 꽃다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1주째인 22일 즐거웠던 수학여행을 떠올리는 학생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가득해야 할 안산 단원고 교정은 마치 심해와도 같이 고요했다. 오전 7시쯤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출발한 2학년 4반 권모(17)·임모(17)·정모(17)군의 운구차량이 차례로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학교를 감도는 적막은 곧 유족과 친구들의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세 번째로 정군의 영정이 학교에 도착하자 유족과 친구들은 오열했다. 정군은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유명을 달리한 소년 영웅.

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째인 22일 오전 장례식을 마친 한 희생 학생의 영정이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을 찾은 가운데 유족이 국화꽃이 놓인 책상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안산=연합뉴스
정군의 가족은 영정사진을 향해 “웅아, 운동장이야”라고 말한 뒤 평소 뛰어놀던 운동장을 한 바퀴 걸었다. 마지막 학교를 떠나기 전 영정을 정든 교실로 향하게 하고는 “교실 보이지. 이제 가자”라며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정군의 형은 “태권도 3단인 동생은 의협심이 강해 평소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면 자신의 몸도 꼭 돌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결국 자신은 돌보지 않다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걷던 정군의 어머니는 “웅아, 웅아…”라며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다 끝내 실신해 119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교실에는 대답없는 책상만이 사망자들을 맞았다. 이름표가 붙어 있는 책상과 의자에는 희생자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교복과 필기구, 누군가 가져다 놓은 하얀 국화 꽃다발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처연함을 더했다. 학교와의 작별인사를 마친 운구차량이 운동장을 나서자 검은 정장차림의 선생님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며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이들은 사고 첫날인 지난 16일 싸늘한 주검으로 목포 한국병원 안치실에 나란히 도착했으며 장례식도 함께하게 됐다. 각자 수원연화장 등에서 화장한 뒤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서호추모공원에 함께 안장됐다.

이날 하루 동안 권군 등 3명의 학생을 시작으로 모두 11명의 학생들이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식을 마친 학생들의 운구차량은 대부분 장지로 향하기 전 차례로 학교 운동장에 들르며 ‘마지막 등굣길’인 노제 행렬을 이어갔다. 한 주민은 “억울하게 죽은 학생들의 넋을 기리려고 노제에 왔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차마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다”며 “안타깝고, 슬프고,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안산=김영석·조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