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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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군 생활 힘들어요”…입대한 아들 고충 도울 방법은

흩어져 살던 가족과 친지들이 다 함께 모인 설날.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으며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며 올 한해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느라 집안에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이 추운 날씨에 내 아들은 군대에서 몸 건강히 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떠들썩한 분위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경우가 많다. 아들과 통화하면서 혹여나 놓친 것은 있는지,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병영 내 가혹행위가 아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는지 걱정되기도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군대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2년 가까이 힘들게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아파하는 부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귀하게 키운 아들을 춥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TV에서 군 내 구타, 자살, 사고, 성추행, 탈영, 가혹행위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부모들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들이 좋지 않은 생각을 품지 않고 무사히 제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언제 어떻게 해야 아들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을까.

◆ 입대 초기부터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부모들이 군에 입대한 아들을 가장 신경써야 할 시기는 입대 직후인 훈련병~이병 시절이다. 이때 관심을 기울여야 자살, 탈영 등 사건 사고를 예방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이 교관이 지시에 따라 수류탄을 투척하고 있다. 육군 제공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신분이 전환되는 훈련병 시기는 기존 환경과 갑작스럽게 단절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받으면서 낯선 군대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난생 처음 총을 잡으면서 생기는 두려움과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한다. 스마트폰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디지털 금단 증상’까지 겪게 된다.

힘겹게 신병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된 이병은 말 그대로 갓난아이와 같다. 전투복은 입었지만 군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훈련소 생활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부대 배치를 받았기 때문에 선임병들이 말하는 ‘어리바리 이등병’인 셈이다. 사회에서 공부도 운동도 잘하던 청년이 군에 입대해 전투복에 이병 계급장을 붙이고 있으면 생활관 내 화장실도 혼자서 찾아가지 못하는 바보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하얀 백지 같은 정신적 상태에서 이병들은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며 그에 맞는 자세와 태도를 갖추도록 요구받는다. 군인정신이 주입되는 것이다. 병장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한 자세로 서 있으면 큰 문제가 안되지만 이병이 같은 행동을 하면 “군인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폭풍갈굼’이 쏟아진다.

2013년 10월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장병들이 구령에 맞춰 행진하고 있다.
이같은 과정이 지속되면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선임병들이 구타나 가혹행위를 하면서 “이병 때는 다 그렇다”는 식으로 몰아가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수용해버릴 위험도 있다. 2014년 발생한 28사단 윤일병 집단폭행사망 사건의 경우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한 젊은 생명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부조리를 견디기 힘들다며 아들이 탈영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탈영하면 자신은 처벌받지만 선임병들은 그렇지 않다. 괴롭힘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범죄자 신세가 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아들이 탈영을 하면 최대한 빨리 원대복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헌병대에 체포되면 나중에 전과기록이 남을 수 있다. 군 당국이 병사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있지만 빈틈은 늘 있는 만큼 이병 시절부터 부모가 관심을 가져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 입대한 아들의 부대 환경도 생각해야

윤일병 사건 직후 군 당국은 병영문화혁신 대책을 통해 병영 악습을 뿌리뽑기 위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처벌 수위가 대폭 올라간 것은 물론 인권의식 강화와 교육 등을 통해 가혹행위를 차단하려는 노력도 강도높게 진행중이다.

해군 초계함에서 미스트랄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하지만 군 당국의 관리가 아무리 철저하다 해도 모든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사를 둘러싼 환경에 어떤가에 따라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아들이 복무하고 있는 부대의 특성을 파악한다면 부모가 아들의 고충을 해결할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군부대에서 사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거론되는 곳은 휴전선 일반전초(GOP)와 해안선 경계부대들이다. 휴전선 경계와 해안 감시 임무를 맡고 있는 부대들은 24시간 눈을 번득인 채 전방을 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경계에 실패하면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하기 때문에 두려움도 크다. 따라서 정신적 피로가 다른 부대에 비해 높다. 밤과 낮이 뒤바뀐 채 생활하는 경우도 잦은데다 부족한 인원으로 많은 과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쌓이면 짜증도 늘어난다. 여기에 임무 수행에 사용하는 총과 실탄, 수류탄은 잘못 사용하면 지난 2014년 일어난 22사단 GOP 총기난사 사건처럼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공군 군견대회에서 군견을 훈련시키는 모습. 공군 제공
후방 부대라 해도 안심하기는 어렵다. 정상적인 지휘계통의 관리가 제대로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조직이라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숫자가 적고 다른 군인들을 지원하는 조직인 의무, 법무, 헌병, 기무, 사령부 참모부서와 경계근무 지원 등 다른 부대를 돕기 위해 파견된 소수의 부대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휘계통의 눈을 벗어나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 또한 다른 군인들을 돕거나 보살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지휘관이나 참모들이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하기 쉽다. 병영악습과 부조리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그 위험성을 사전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지난 2014년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28사단 윤일병 집단폭행사망 사건도 지휘계통의 관리가 제대로 미치지 못한 의무중대에서 발생했다.

◆ 말 한마디, 눈 마주침 한번이 큰 사고 예방한다

아들이 몸 성히 군 복무를 마치려면 부대 간부들의 성실한 관리가 최우선이다. 그러나 학교 시험 성적이 선생님만의 책임이 아니듯 자녀의 군 생활도 부모하기 나름이다.

우선 아들이 복무하는 부대가 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지휘관이 병사들을 잘 상담하고 있는지, 선임병이나 동료들이 서로를 잘 챙겨주고 있는지, 전화나 인터넷 PC 사용은 자유로운지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유사시 지휘관을 도와줄 준비를 해야 한다. 부대 개방행사에 참석해 복무 환경을 둘러보고 지휘관을 면담하면 더욱 좋다.

대북확성기에 설치된 위장망을 제거하는 육군 장병들. 육군 제공
통화할 때는 부모의 반응이 중요하다. 아들이 “군 생활 힘들다”라고 하소연하면 “내가 복무했을 때는 더 열악했다. 복무기간도 짧은데 왜 그러냐”식으로 답하면 위로나 격려가 아닌 ‘꼰대질’이다. 아들은 부모에게서 꼰대 역할을 바라지 않는다. 꼰대는 부대에서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부모는 “어디가 힘드니?”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아들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부대 안에서 면회를 할 때도 “우리는 너를 이해한다”며 가능한 오래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외출이나 외박을 나오면 부조리를 신고, 상담할 수 있는 국방헬프콜, 아미콜 등을 알려주거나 아버지가 아들을 목욕탕에 데려가 아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모의 역할이 가장 큰 경우는 군대 간 아들이 입대 전 사회에서의 문제로 힘들어할 경우다. 기자가 군복무하던 시절 부대에서는 여자친구가 “우리 헤어져”라며 이별을 통보해 매일 밤 울던 이병, 친구의 배신으로 입대 전 일용직을 하며 모았던 돈을 모두 날려 세상을 저주하며 살던 일병 등이 있었다. 이런 경우는 지휘관이나 선임병들이 해결하기 어렵다. 입대 전 상황을 잘 아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2015년 지상군 페스티발을 찾은 어린이들을 전차병이 전차에 태워주고 있다. 육군 제공
대한민국은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나라다. 청년들은 20대 초반의 창창한 나이에 낯선 환경에서 2년 가까이 복무하고 사회로 복귀한다. 이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려면 군 간부들 뿐만 아니라 부모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입대한 병사와 20년 이상 같이 살아온 부모만큼 병사를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지휘관과 부모가 함께 병사들에게 관심을 갖고 마음을 모으면 사고가 줄어들고, 병사의 군 생활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설 연휴 직후 두려움과 불안감에 떨며 입대할 날짜를 기다리는 아들이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훈련소로 떠날 수 있도록 “부모는 널 항상 지켜보겠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어떨까. 따뜻한 위로와 관심, 그것은 군의 병영문화 개선에 힘이 되는 밀알이기도 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