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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병사도 간부도 "군 생활 힘들다"는 '헬조선' 군대

과학화훈련에 참가한 육군 병사가 전방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육군 제공
“2014년 40명이던 자살 병사가 2016년 21명으로 감소했다. 군무이탈 병사도 2014년 418명에서 2016년 199명으로 줄었다.”

지난 2일 국방부가 발표한 ‘병영문화혁신 성과 및 추진방향’ 중 일부다. 국방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놓으면서 “자살 및 군무이탈 병사가 줄어든 것은 병역판정검사가 엄격해졌고, 군에 입대한 자녀와 부모의 소통 채널이 다양해진 결과”라며 그동안 추진했던 관련 정책들을 열거하는 등 자화자찬에 열중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자살과 군무이탈이 줄어들었으니 얼핏 보면 국방부의 병영문화혁신 정책이 실효를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병사들의 생활모습을 온라인 채널(밴드, 카카오 등)로 알리고 수신용 공용휴대폰과 영상 공중전화기가 보급되면서 가족들과 통화를 할 수 있으며, 접적지역에서도 면회가 가능해졌으니 “군 생활 좋아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군 생활이 정말로 좋아졌을까. 국방부가 제시하는 통계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 스트레스에 포위된 청춘들 “입대해도 힘들다”

2014년 28사단 윤일병 집단폭행사망 사건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국방부는 병영문화혁신을 기치로 내세우며 대대적인 내부 개혁에 착수했다. 하지만 TV를 보면 “00 부대에서 가혹행위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2014년 4월 발생한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가해자들. 육군 제공

20대 초반의 청년 A씨의 예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수능을 치르고 대학 진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꼭 가고 싶은 대학이 있어 재수를 선택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공부에 매달리느라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의 교류가 끊어지면서 고립감과 좌절감에 빠진 A씨는 도피처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A씨가 군에서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의 통과의례 중 하나인 대입에서 좌절을 맛본 청춘들이 내면의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 입대하면 가혹행위나 자살 등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A씨와 같은 사람에게 군이 대처하는 방법은 ‘복무부적격자’라는 낙인이다. 사고 방지에 급급한 군은 복무부적격자를 많이 찾아냈다며 그 실적을 자랑한다. 실제로 지난 2일 국방부는 부대 차원의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귀가한 병사가 지난해 1만5416명에 달했다며 이를 병영문화혁신 정책 성과에 포함했다. 군대와 사회 양쪽에서 버림받은 A씨와 같은 청춘에 대한 배려는 없다. 쓸모없는 자원을 버리는 태도만 있을 뿐이다. 
지난해 6월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중국어선 단속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 병사가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입대해서 군 생활을 이어가는 청춘들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병역의무로 인해 자기가 열심히 추구하고 있던 인생의 계획이 틀어지면 군 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의지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고시에 빨리 합격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리는 병사, 취업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병사…. 이런 청춘들이 군 생활에 적극성을 띠게 될 것인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 휘둘리는 피동적 존재로 격하되면서 갖는 두려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 제약받는 표현의 자유 등은 스트레스를 심화시킨다.
화이트해커 선발대회에 참가한 장병들이 컴퓨터를 사용해 해킹 방어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이같은 상황에서 군이 사용하는 방법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다. 하지만 병사들은 “피할 수 없으면 (누군가를) 갈궈라”로 대체할 가능성이 더 높다. 피할 수 없을 때 즐기는 것은 ‘내가 군 복무를 즐겨야겠다’는 결심과 의지가 갖추어져야 가능한 고차원적 방식이다. 스트레스에 포위된 병사들 중 스스로 긍정적인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노약자와 여성 등을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처럼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혀 자존감과 가치를 되찾는 것을 더 쉽게 느낀다. 후임병을 상대로 한 가혹행위가 반복될 환경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병사들의 고민과 스트레스의 원인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땜질식 위로, 전시성 홍보효과에 급급한 동안 제2, 제3의 윤일병 사건으로 이어지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계속 돌아가는 셈이다.

◆ “간부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하고 재취업도 힘들어”

직업 개념으로 군인의 길을 선택한 부사관과 장교들도 군 생활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2년 간 복무하고 제대하는 병사들과 달리 오랫동안 군에 몸담으면서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전역 후 경제활동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입대부터 전역까지 헬조선’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백승주(새누리당)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아 지난해 말 공개한 2016년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자살한 군 간부들은 2012년 33명, 2013년 31명, 2014년 21명, 2015년 31명, 2016년 6월까지 15명 등 131명에 달한다. 이 중 부사관은 102명, 장교는 29명으로 부사관 자살률이 훨씬 높았다. 계급별로는 하사가 39명, 대위가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문제는 간부 자살률이 병사 자살률을 추월한다는데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 자살한 병사는 22명인데, 같은 기간 자살한 간부는 31명이었다. 2016년 상반기에는 자살한 병사가 11명, 간부는 15명이었다. 국방부는 지난 2일 발표한 병영문화혁신 성과에서 이같은 내용은 포함하지 않아 “유리한 것만 공개한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비행훈련을 마치고 기지로 복귀하는 공군 조종사들. 공군 제공

간부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권한에 비해 책임이 큰 초급 간부의 특성에 기인한다. 하사는 병사로서 군복무를 했지만 환경의 변화로 이병처럼 ‘어리바리’ 상태다. 병사들을 다독이면서 부대에서 부과하는 과업을 수행하면서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대위 역시 중대장으로서 업무 강도가 높은데다 100여명의 중대원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중대원들을 이끄는 입장에서 힘들어도 내색하기 어렵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려 해도 진급에 악영향이 있을까봐 포기한다. 이 과정에서 내면은 곪아간다. 군 관계자는 “오래 전에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면 진료기록이 남아 진급에 문제가 될까 걱정’이라며 처방전을 발급하지 않고 조언만 해줬다”고 회상했다.
전역을 눈앞에 둔 간부들은 사회 재정착이라는 또다른 과제 앞에 고민한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학용(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말 국방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2016년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제대군인 취업률은 2011년 68%에서 2015년 37%로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취업한 제대군인 1만8378명 중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제대군인은 8001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44%에 달했다. 비정규직에 취업한 제대군인은 군인연금으로 부족한 수입을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2015년 전역자 7362명 중 군인연금의 수혜를 받는 19년 6개월 이상의 복무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전역한 사람이 4025명으로 전체의 55%에 달했다. 사회 진출에 따른 경제적 기반 확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대 관리까지 해야 하는 간부들의 심적 스트레스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안한 일자리와 적은 수입, 자녀 교육 등 생활비 지출 증가 등에 시달리는 제대군인들은 ‘한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민간인 B씨는 예비역 C씨에게 빌려준 수백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B씨가 수소문해보니 신소재 사업에 참여했던 C씨는 동업자들이 잠적하면서 거액의 빚을 떠안았다. 빚을 갚기 어려워진 C씨도 군대 선후배와 동기 등 지인들에게 돈을 빌린 후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자금 회수를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니 편의점, 치킨집 창업 후 빚을 지고 폐업하는 예비역들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는 장병들. 국방부 제공

군복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군대에 대해 물어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춥다, 배고프다, 힘들다, 아파도 내색하기 어렵다, 시간낭비다’는 부정적 반응들이다. 시간이 지나야 ‘의무, 헌신, 충성, 희생’ 등 사회화 과정에서 배운 요소들이 나온다. 청년들이 군 생활을 힘들다고 인식하면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기 어렵고, 군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던 촛불집회 직후 학생들이 스스로 쓰레기를 치워 광장이 깨끗했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젊은이들은 본인이 스스로 뭔가를 해야겠다고 판단하면 어느 세대보다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러한 자세가 군에서도 이어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수천억원의 무기를 도입한다고 해서 전투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장병들이 군생활을 힘들어하는 진정한 이유를 찾는 일에 소홀한다면 군 조직은 서서히 병들어갈 것이라는 점을 군 당국은 깨달아야 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