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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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대통령님, 자주국방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해요”

국민과 국가가 외부로부터 간섭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려면 강력한 힘이 필수적이다. 강대국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 나라를 보존하고 외교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국가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의 힘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군사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 통화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군 통수권을 이양받아 청와대에서 공식 집무를 시작하면서 지난 9년 동안의 국방정책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구축한 압도적 국방력 우위에 기반을 둔 한반도 평화유지’에 중점을 둔 문 대통령의 국방정책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및 킬 체인 조기 구축 등 자주적 국방정책이 전면에 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복지와 경기부양 예산 소요 증가로 국방예산 증액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여 문 대통령의 국방정책 구상이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선 공약 지키려면 5년간 수십조원 소요

공군 방공포병 실탄사격훈련에서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공군 제공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북한 핵, 미사일 대책을 계승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참여정부의 핵심 국방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유사시 북한 미사일 기지 등을 타격할 킬 체인(Kill-Chain) 등을 최우선적으로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입장은 국방부가 지난달 발표한 ‘2018~2022 국방중기계획’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국방부는 2020년대 초까지 10조 2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KAMD와 킬체인, 대량응징보복(KMPR) 등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작업이 지속될 전망이다.

육군 장병들이 훈련이 시작되자 신속하게 자신의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육군 제공
참여정부 시절 적극 추진됐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무기 연기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임기 내 전환이 추진된다. 이르면 올해 가을쯤 열릴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양국 국방부간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밖에도 애국페이(애국심으로 청년 노동력을 착취한다)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부사관을 늘리면서 병사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고 병사 급여를 최저임금 대비 50%까지 연차적으로 인상할 방침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지난해 말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군인보수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국회예산정책처의 검토에 따르면, 2018~2022년까지 병사 규모는 2018년 41만5000명에서 2022년 33만1000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의 40%까지 증액하려면 8조6827억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공약대로 최저임금의 50% 수준으로 늘리려면 1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여기에 병사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일 경우 유급지원병과 부사관을 증원해야 해 간부 인건비도 증액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역시 마찬가지다. 임기 내 전환을 실현하려면 기존 계획을 가속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전작권을 빠른 시기 내 전환하려면 군사정찰위성, 무인정찰기, 정보융합체계 등 감시정찰 관련 전력 확보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2006년 노무현정부 당시 전작권 전환에 합의했을 때 작성된 2007~2011 국방중기계획은 우리 군의 독자적인 작전능력 확보를 위한 합참 조직개편과 감시정찰, 지휘통제, 정밀타격능력 확보에 151조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년 상반기에 발표될 2019~2023 국방중기계획 역시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전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지만 예산 확보 등 구체적 실천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작권 전환 추진에 차질이 예상된다.

◆드러나지 않은 지출도 고려해야…우선순위 설정 과제

대선이 치뤄진 9일 오후 청와대 본관 앞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더 큰 문제는 전임 정부가 착수했던 대형 사업들을 현 정부가 계승해야 한다는 데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였던 2014년 차기전투기(F-X) 사업을 통해 도입이 결정된 F-35A 스텔스 전투기는 내년부터 2022년까지 40대가 들어온다. 7조4000억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의 대부분을 문재인정부에서 지출해야 한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2019년까지 4대가 국내에 들어올 에어버스 A330MRTT 공중급유기 도입비 1조4881억원과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4대 도입에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1조3000억원도 문재인정부가 지불해야 할 몫이다. 2026년까지 8조원이 투입되는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사업, 2020~2022년까지 1조6000억원을 투입해 개발되는 소형 무장헬기(LAH)와 소형민수헬기(LCH) 사업도 마찬가지다. 국방개혁에 따른 부대개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설 건설 및 철거 비용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여민관 집무실에서 제 37주년 5.18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국정교과서 정상화 업무지시 전자서명에 앞서 컴퓨터 접속을 위해 카드로 인증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정부가 전작권 조기 전환과 국방개혁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려면 그에 맞는 장비를 추가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사회복지,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서의 지출을 고려하면 국방비 증액은 쉽지 않다.

박근혜정부에서 진행했던 무기 획득 사업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기 도입은 사업 착수 초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완료 시점에는 그 규모가 줄어든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에는 박근혜정부가 착수했던 사업들 중 진행 상황이 초기 단계이거나 문재인정부 임기 내 도입이 완료되는 대형 사업들이 적지 않아 지출해야 할 비용 규모가 크다. 검증을 통해 불필요한 지출을 막지 않으면 문재인정부가 추진할 전작권 전환과 국방개혁에 필요한 신규 사업은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해외 도입 무기 중 F-35A나 글로벌호크 등 해외군사판매(FMS)로 들어온 미국제 무기는 세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FMS는 200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수입한 37조원어치 무기 중 27조원이 이에 해당될만큼 우리 군의 미국제 무기 도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FMS는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제 무기를 구입할 때 미국 정부가 대신 구입해 넘겨주면 동맹국은 추후 해당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사후 정산 방식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단가에 변동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불필요한 지출이 있었는지, 향후 예산 집행 과정에서 과다하게 지출할 위험이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국내 무기개발 사업 역시 개발과정에서 ‘눈먼 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내 기술수준과 미래 전장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군이 조직 규모 유지를 위해 북한 위협 수준을 부풀리거나 기술 수준 평가를 주관적으로 하는 등의 행위도 차단해야 한다.

지난 3월 해상기동훈련에 참가한 해군 함정들이 전방을 향해 기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검증을 통해 불필요한 지출을 막으면 국방개혁과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무기도입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정책 조정이 이어져야 한다. 국방예산 증가율이 이명박정부는 5%, 박근혜정부는 4%대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문재인정부에서도 국방예산의 대폭 증가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정된 예산 규모 하에서 기존 사업을 지속하면서 신규 사업을 추진하려면 미래 전장환경과 동북아정세 변화, 국내 기술발전 추세 등을 종합해 전력증강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이 작업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면서 군 전력 증강을 위해 많은 무기를 외국에서 도입했는데, 이지스 함대방공시스템,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F-15K 2차 도입, E-737 조기경보통제기 등 상당수가 미국제 무기였다. 미국에서 생산하거나 판매하지 않는 무기는 유럽, 이스라엘에서 구입하거나 국내 개발을 결정했으나 그 비중은 낮았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정부가 추진했던 무기도입사업을 계승하면서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전력 보강도 진행해야 한다. 무기 도입 규모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군 소식통은 “이대로 가면 문재인정부는 미국제 무기를 가장 많이 들여온 진보정부로 기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를 우리 힘으로 지키자’는 구호만큼 달콤한 말은 없다. 대선 기간 동안 안보 문제에 대해 많은 공약이 등장한 것도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강하게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 공약을 시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일자리 만들기와 복지 증진, 경기부양 등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국방비의 대폭 증액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국방비 증액 노력과 함께 무기 획득 사업의 예산 지출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자주국방은 돈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