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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보다 ‘외교’, 외교부보다 ‘청와대’에 방점

안보 컨트롤타워 軍출신 배제… 국방보다 외교에 ‘방점’ / 정의용 靑 안보실장 인선 배경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장에 정통 외교관 출신인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를 임명한 것은 ‘국방’이 아닌 ‘외교’ 중심의 안보 정책 운용에 방점을 찍은 것이란 분석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안보실장 자리를 독식했던 군 출신이 남북 관계와 주변 4강(미·중·러·일) 외교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북핵 문제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포함한 복잡한 외교현안을 풀어내는 데 외교적 역량을 갖춘 외교안보 사령탑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청와대 직제 개편을 하며 비서실장 산하의 외교안보수석이 폐지된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유엔서도 맹활약 문재인정부의 첫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가 2013년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사무차장보 겸 부조정관을 맡아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유엔 홈페이지


◆국방보다 ‘외교’, 외교부보다 ‘청와대’에 방점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정 실장 인선 배경에 대해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를 국방의 틀에서만 협소하게 바라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저는 안보와 외교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북핵 위기 상황에서는 우리의 안보에서 외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안보의 개념이 보다 더 확장적이고 종합적이어야 하는 이유”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정 실장 역시 임명 발표 뒤 인사말에서 “무엇보다도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를 위해 굳건한 동맹에 기초한 한·미 간 긴밀한 안보체계를 유지하고, 중국·일본·러시아 등과 긴밀한 전략적 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답변하는 정의용 정의용 신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21일 춘추관에서 자신의 인선 사실이 발표된 뒤 북핵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후보 시절 캠프에서부터 외교·안보 분야 자문 역할을 맡은 정 실장과 외교장관에 비(非)외무고시 출신의 강경화 후보자를 발탁한 점, 통일외교안보특보에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과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라는 무게감 있는 인사를 임명한 것은 청와대 주도의 정책 결정과 외교부 개혁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핵, 대북협상 등 굵직한 외교안보 어젠다를 청와대에서 설계하고 외교부는 이를 실행하는 역할에 치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盧와 대화하는 문정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를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로 임명했다. 2004년 당시 동북아시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문 신임 특보(왼쪽)가 청와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캠프 외교 정책 총괄한 다자외교 전문가

정 실장은 외교부와 정치권에서 풍부한 경험을 지닌 다자외교·통상 전문가로 1971년 외무고시 5기로 외무부에 입부한 뒤 외무부 통상정책과장과 통상국장, 통상교섭조정관 등을 지냈다.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제 의원외교 부문에서도 활약했다.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외교자문단인 ‘국민 아그레망’ 단장을 맡아 캠프 외교 정책 수립을 총괄했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TF)를 이끌며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과 만나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했다. 문 대통령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과의 통화에 배석하는 등 외교관계 초기 ‘세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점, 한반도 주변 4강 등에 특사를 파견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 점 등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라인 인선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것은 국가안보실장과 1, 2차장 인선, 외교부, 국방부 장관 인선이 조화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군 출신과 외교관 출신, 전문가 등의 조합을 두고 장고가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안보실장을 군 출신으로 할 것인지 외교관 출신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실장은 이날 임명이 결정된 시기를 묻는 질문에 “며칠 전이다. 대통령을 모시고 쭉 일해왔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몰랐지만 안보실장을 맡게 된다는 것은 며칠 전에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문정인 교수에게 특보 임명 사실을 통보한 건 지난 18일 밤으로 알려졌다.

정 실장은 홍석현·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있는 데다 주로 통상 업무를 해왔다는 점에서 과거와 달리 실무형 실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영준·김예진·이우중 기자 yjp@segye.com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울(71) △서울고·서울대 외교학과 △외무부 통상국장, 주미 공사, 주이스라엘 대사,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 주제네바 대사 △17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