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로 당선된 백승아(39) 당선자는 17년간 교단에 선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했다. 정치는 선택지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정책과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교권 앞에 절망하는 동료 교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신음하는 학부모도 백 당선자를 움직이게 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7월 20대 초등교사가 학교에서 목숨을 끊은 이른바 ‘서이초 사건’이었다. 당시 교사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이었던 그는 교사가 본질적인 교육업무에서 벗어나 악성민원을 감당하지 않도록 법안을 만들고자 국회를 뛰어다녔다. 한계를 느낄 때쯤 민주당으로부터 영입인재 제안을 받았고 그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세계일보는 24일 백 당선자와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직 교사가 국회의원이 된 사례는 처음이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나 계기는
“원래 정치를 할 생각은 없었다. 휴직 5년을 포함해서 17년간 초등교사로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행복했다. 학부모들께서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만나 한층 성숙해졌다고 말해주실 때 가슴이 뛰었던 천생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고 사교육비 부담으로 학부모들이 신음하고 있다. 교권 추락으로 교사들은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다.
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강원교사노조를 창립했다. 이후 교사노조연맹에서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서이초 사건이 일어났다. 전국 50만명 교사 중 30만명이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을 정도로 교사들은 지금 절망하고 있다. 교사들의 현장성과 전문성이 교육정책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곪아 터진 일이라 판단한다.
교사노조 집행부로 교권 4대 입법안을 만들기 위해 국회로 뛰어다니다 보니 벽에 대고 소리치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래서 교육현장을 잘 아는 교사가 직접 법을 만들어야 기형적 구조를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교육현실을 잘 알고 있는 젊은 교사를 인재로 영입하고 싶다고 제안을 받았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우고 교사들이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바로 받아들였다. 현직교사가 사표를 내고 국회에 입성하는 건 제가 처음이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왔다.”
—1호 법안으로 염두하고 있는 법안이 있다면. 그 법안을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서이초 특별법이다. 서이초 특별법은 교사들이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법안이다. 교사의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하지 않도록 교권을 보호하고 교사가 수업시간까지도 수백 수천 건의 민원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민원창구를 일원화하고자한다. 또 교사가 고소당할 시 학교 및 교육청이 공동 대응하는 체제를 확립하는 등 교사들이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다.”
—현행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 규정에 대한 의견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하는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가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교사들을 아동학대로 무고하는 수단이 됐다. 아동복지법 정서적 아동학대조항은 죄형법정주의상 명확성의 원칙이 부족하기 때문에 증언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신고하면 재판까지 하게 되어 교사들이 마음 놓고 교육에 전념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 4법이 개정되었으나 여전히 정서적아동학대로 무고를 당해 고초를 겪는 교사가 많다.
아동학대 수사에 무고를 엄격히 판단하는 요건을 법제화하고 수사 과정에서 교원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서적 아동학대와 정당한 생활지도를 구분할 수 있는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 무고가 남발되지 않도록 교육기관의 확인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등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아동학대 신고로 인해 고통 받는 교사의 교육할 권리를 보장하고 대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아동학대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해결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교사들의 정치기본권이 없는 것이다. 입법과정에 교사가 참여할 수 없기에 학교현실과 동떨어진 법안과 정책들이 만들어져 학교는 기형적 구조가 되었다. 입법과정에 현장교사의 시선이 반영된다면 학교시스템 전반에 현실성과 교육전문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교사와 공무원의 근무시간 외 정치표현 자유와 정당 가입, 정치후원을 보장하고 공직선거 출마를 보장하는 입법을 추진하려 한다.
둘째는 경쟁교육의 심화이다. 현재 교육은 입시의 수단이며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지금까지 입시제도가 변해왔지만 어떻게 줄 세울까 방법을 고민하는 문제였지 줄 세우기 자체는 여전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실적 과시형 정책을 강행하며 기초학력지원 예산을 축소하는 등 공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경시하고 있다. 학교가 본연의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공교육 정상화에 힘쓰겠다.
아울러 경쟁교육의 심화는 사회적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계층 및 계급을 형성하는 문화, 학력차이에 따른 임금격차가 불러온 부작용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임금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어서 경쟁교육을 완화하고 누구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교권 회복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저는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회복하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교실, 배움이 있는 교실을 돌려주기 위해서 서이초 특별법을 제안했다. 서이초 특별법의 5가지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의 본질 업무 법제화이다. 여러 기관에서 맡아 처리해야 할 일들이 교사 개인의 업무와 책임으로 넘어오면서 학습지도, 생활지도 등의 교사의 가장 본질적인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둘째, 학생 분리 지도 법제화이다. 선량한 대다수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교사의 교육권이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학생 분리 지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분리된 학생도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학교 민원응대 시스템 법제화이다. 더 이상 교사 개인에게 악성민원을 감당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를 위한 별도의 민원 대응관련법과 그에 기반을 둔 매뉴얼을 만들어야한다. 넷째, 정서적 아동학대의 구성요건의 명확화이다.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아동학대 구성요건을 명확화 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서 교권 4법 개정 이후에도 남발되는 아동학대 고소·고발을 막아야한다. 다섯째,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이다. 학교폭력예방교육과 학교폭력업무는 별개의 것으로 봐야한다. 교사들이 교육적 의무를 다하되 일상의 갈등 상황이나 교육적 범위를 넘어서는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서는 교사가 처리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해야한다.
이처럼 교사들이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교육 외적인 행정업무보다 본연의 업무인 교육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공교육은 정상화될 것이다. 또 사교육은 내 아이가 보다 더 높은 계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학력차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교사의 정치활동 금지에 대한 생각은
“현재 교사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교사가 학생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근무시간 외(학교 밖) 정치기본권이 회복된다고 해서 교사가 자신의 정치성향을 학생에게 강요하거나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교육의 중립성은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그런데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옥죄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정치활동금지국가가 되었다.
60여 년 동안 교사들은 정치기본권이 없어 자신의 삶에서 정치를 아예 배제하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정치적 책임감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교사들은 정당가입을 하지 못하고 후원금도 내지 못한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사실상 ‘정치금치산자’이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시민이 아니기에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에게 민주시민의식을 갖도록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교사 정치기본권은 회복되어야한다.
이번에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사표를 썼는데 해외의 경우에는 휴직하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제가 발표한 교육공약에 관심이 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교사들은 처벌 받는다.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면 법과 제도를 바꿔야하지만 교사들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교육이 망가지는 현실을 보면서도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우리 공교육은 정치판에 휘둘렸고 누더기가 됐다. 교사에게 정치기본권을 돌려주는데서 공교육 정상화가 시작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늘봄학교’에 대한 생각은
“늘봄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산, 인력, 장소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68조9000억원 가운데 일부를 떼어내 늘봄학교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대규모 사업인 늘봄학교에 예산이 우선 배정되면서 기존 정규교육 과정이 침범당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미래를 위해 국가책임 돌봄은 필요하지만 예산확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아동 돌봄 영역은 교육과 돌봄이 중첩되어 있다. 학교에서 돌봄 영역을 전담하면 정규교육과정이 침해받게 된다. 따라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돌봄청’을 신설하고 교육부, 복지부, 여성가족부, 지차제등 각 기관으로 분산된 업무를 통합·일원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마을결합형 국가돌봄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내기 정치인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저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다. 교육과 양육, 청년 문제가 제 자신의 문제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진정성을 갖고 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서이초 사건으로 드러난 교사들이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교육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교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교육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서이초 특별법, 국가책임 온동네 돌봄법, 교사정치기본권이 제가 가장 먼저 만들고자 공약한 법안이다. 그리고 세 아이 엄마로서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출생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더 많이 공부해 좋은 정책을 만들겠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공교육을 살려서 아이들이 입시지옥과 사교육에 내몰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자랄 수 있는 돌봄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겠다. 양극화와 서열주의가 당연하지 않은 세상, 지나친 임금격차가 당연하지 않은 세상,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어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교사출신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오니 교육계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일 잘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 더 많은 교사들이 국회에서 일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고 싶다. 독일은 국회의원 20% 이상이 교사 출신이다.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정치를 혐오하지 않는 민주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고 적극 개입하는 게 권장되는 튼튼한 민주주의의 뿌리를 갖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