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랑은 늘 존재해왔다. 한반도 땅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과거,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애정을 표현했을까. 조선에서는 사랑에 빠져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주고받기가 어려웠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적인 분위기 탓도 있었거니와 신분 차이나 다른 지방으로 떠나면서 얼굴을 보게 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애틋했으리라.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을 앞둔 조선 시대 선비들은 정표로 아쉬움과 애절한 사랑을 담아 어떤 선물을 건넸다.
바로 직접 뽑은 자신의 생니였다. 생니를 뽑을 정도로 불타오르는 마음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이른바 '발치풍속'이다.
당대 이름을 날린 기생 중에는 발치한 생니가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는 이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연비'라는 것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새기는 문신을 뜻했다.
성종실록에는 양반가 유부녀였음에도 여러 남자와 정을 통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성, 어우동의 팔뚝과 등이 사내의 이름으로 가득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등에서도 이 연비는 종종 등장한다. 본디 조선에서 문신은 형벌의 의미로 죄를 지은 자의 몸에 죄명을 새기는 데 이용됐다.
형벌이었던 고통의 행위가 사랑 앞에서는 달콤한 의식처럼 변해버린 마법. 성리학의 나라를 표방한 조선 시대에서도 청춘남녀는 불길에 휩싸이듯 자신을 태워가며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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