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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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봐도 우울한' 상조·보험광고…어린이 프로그램 시간대 점령

“만화 뒤에 나오는 특정 상조광고만 보면 아이가 자꾸 울어요.”

세 살, 다섯 살짜리 두 아이의 엄마 지모(34)씨는 요즘 TV를 켜기만 하면 나오는 상조, 보험 광고 때문에 고민이다. 지씨는 “어른이 봐도 우울한 광고를 왜 어린이 프로그램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틀어주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채널로 돌려도 똑같은 광고가 나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상조, 보험 광고가 늘면서 케이블방송은 물론 지상파방송의 어린이프로 시간대까지 장악하다시피 했다. 경기 불황에 유독 이런 광고가 늘어난 이유는 뭘까.

◆상조, 보험 광고 왜 늘었나=과거에는 죽음을 상품화한다는 등의 이유로 장묘업 광고 자체가 법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업계의 요구로 2005년 12월 관련 조항이 삭제되면서 상조광고가 가능해졌고 최근 불황을 타고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한 방송사 광고편성 담당자는 “경기악화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광고를 대폭 줄이는 반면 상조, 보험사 등은 지속적으로 광고를 내보내 전체 광고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비중이 저절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망과 노후 보장성 등의 상조, 보험 광고가 어린이 프로그램 시간대에 집중 편성된 것은 광고단가 때문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 관계자는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간대가 하루 중 광고 단가가 가장 싸다”면서 “상조나 보험 광고가 주부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저렴하면서도 아이뿐 아니라 주부들도 많이 시청하는 오후에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광고 대부분이 전화로 연결되는 콜센터 광고인데 콜센터 직원들이 6시쯤 퇴근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집중 광고하는 것도 이유”라고 덧붙였다.

김광수 고려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상조나 보험 광고 자체에 큰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광고에 슬픈 감정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사회가 불안할수록 호소력이 커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며 “그것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부각시키면 사회가 우울해지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로 좋은가=상조, 보험 광고의 수요가 분명히 있지만 편성시간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상조, 보험광고에 대한 민원이 많아 집중 심의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광고 내용에 대해서만 심의하기 때문에 편성은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편성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광고 횟수나 시간을 심의할 뿐”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방송사 측은 “‘어린이프로는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델이나 상품을 광고하지 못한다’는 조항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재 유일하게 편성시간 제한을 받는 것은 주류뿐이다. 주류 광고는 국민건강증진법에 의해 밤 10시 이후에만 내보낼 수 있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에 대한 특별법’을 입법예고함에 따라 2010년 1월부터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의 광고도 어린이가 주로 시청하는 오후 5∼9시에는 금지된다.

방통심의위 정호근 심의2팀장은 “광고는 방송법보다는 식품법이나 의료법 등 품목별로 광고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주류 광고처럼 국민적 공감이 이뤄져야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