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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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軍용어 제대로 알고 고치자

해병대가 국방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순검 등 해병대 특수 용어를 폐지하고 육군 등 타군이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해병대 예비역들의 ‘순검 폐지 반대 시위’까지 불러온 용어 논란이 일단락될 모양이다.

윤승모 중앙대 겸임교수·언론학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가 해병대 용어 교체를 권고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일제 시대 용어는 바꾸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용어 교체에선 ‘일제 청산’에 역행한 것도 있다. 순검을 점호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순검(巡檢·순찰하여 살핌)은 조선시대에도 쓰던 우리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온다. 물론 순검은 일본어에도 있다. 일본어 사전에는 ‘함내(艦內)를 순검하다’ 등의 용례가 나온다.

오늘날 해병대에서 쓰는 순검과 유사하다. 이로 볼 때 해병대의 순검이 일본에서 유래됐다고 유추할 수는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뜻으로 썼던 우리말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점호(點呼: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인원을 확인함)는 사전에는 나와 있지만 원래 우리말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점호’의 뜻으로 점(點), 점명(點名), 점고(點考)라는 말이 있을 뿐 ‘점호’는 없다. 점호는 중국에도 없는 말이다. 한자 단어 구성 원리에 맞지 않는다. 훈독 자(字)와 음독 자를 섞어 쓰는, 독특한 조어(造語) 문화를 가진 일본에서 만든 일본말이다.

일본말이라고 무조건 거부하자는 게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일본 원산의 현대어를 빼면 오늘날 한국어의 존립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현대어는 우리에겐 없던 개념이다. 그러나 점호는 다르다. 같은 뜻의 우리말이 옛날부터 있었다. 기왕이면 고쳐 쓰는 게 좋다.

그런데 ‘일본 용어 청산’ 운운하며 제시한 대안이 바로잡아야 할 ‘본토 일본말’이라니! 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군대에는 일본말뿐 아니라 정체불명의 ‘잡탕말’도 많다. 국방부가 권장한 대체용어 중에는 ‘일조점호’라는 것도 있다. ‘일조(日朝)+점호’일 게다. 일조는 도대체가 근본이 없는 말이다. 심지어 일본어 사전에도 없는 비문(非文)이다. 한자를 쓰면 유식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다 말이 되는 건 아니다.

군대에서 일과를 마칠 때 흔히 “고생하십쇼”라고 인사를 한다. 가뜩이나 고생하고 있는데 더 고생하라고? 의미를 되짚으면 욕이 될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예법에 없는 이 같은 엉터리 군대 말이 이제는 일반 사회에서도 흔히 쓰인다. 대한민국 군대가 한국어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오염시키는 근원(根源)이 돼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용어를 정비하려면 우선 그 용어의 뜻과 개념을 정확히 파악할 일이다. 순검이든 점호든, 개폐를 논하기에 앞서 군대에서 매일 저녁 실시하는 ‘점검행위’의 개념 정립부터 해야 한다. 내무실(생활실)은 병의 사생활 공간이니 간부들이 멋대로 들쑤시면 안 된다는 전제 하에 ‘인원 수만 확인하겠다’는 취지에서 순검 대신 점호를 쓰라는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는 하겠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전반적인 기강 점검이라면 오히려 순검이 더 적합한 용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용어 정비를 밀어붙여 개악(改惡)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병영문화 혁신을 위해서도 올바른 언어 사용은 필요하다.

윤승모 중앙대 겸임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