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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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 '아빠와 크레파스'의 주인공 양현경

 

‘어젯밤에 우리아빠가 술 취하신 모습으로 한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동요 같은 대중가요 ‘아빠와 크레파스’를 패러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노랫말이 본래 가사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실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양현경은 술에 취해 크레파스를 사 오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노랫말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 가사에 배따라기 이혜민이 곡을 붙여 음반을 취입했는데 방송심의에 걸려 ‘술 취하신’이 ‘다정하신’으로 바뀌었다. 양현경은 배따라기 2집에서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이하 봄비)’를 같이 불렀다. 이후 배따라기 7집이 나올 때까지 함께 노래했다.

그는 지금 인천 학익동에서 라이브 카페 ‘열린 음악회’를 운영 중이다. 밤 10시부터는 그녀의 독무대다. 홀로 통기타를 치면서 삶의 열정을 뿜어내며 산다. 기타를 손에 잡은 그 순간부터 음악을 쉰 적이 없단다. 통기타로만 노래하는 무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통기타에 빠져 사는 그녀를 만났다.

 - 음악은 시작한 계기는.

"1981년 명동 쉘브르에서 공연을 시작했어요. 남이섬에서 열린 라디오 공개방송 ‘아마추어 통기타 노래자랑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게 계기가 됐어요. 몇 년도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이종환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래서 이종환의 쉘브르라는 곳을 알게 된 거죠. 쉘브르에서 노래를 하려고 응시했다가 예선만 합격하고 본선에서는 떨어졌었어요. 6개월을 기다린 후에야 쉘브르에서 공연할 수 있었어요."
 
- ‘배따라기’ 2집에서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를 같이 불렀지요.

"가수 이진관 씨의 소개로 배따라기 이혜민 씨를 만났어요. 이혜민 씨는 저를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봤던 것 같아요.(웃음) 우여곡절 끝에 이혜민 씨와 함께 노래하게 됐죠. 이혜민 씨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라며 들려준 노래가 ‘봄비’였어요.

노래를 들으니 ‘나는요’라는 부분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꽂히더라고요. 말 그대로 탐이 났던 거죠. 그래서 이혜민씨와 듀엣으로 이 노래를 취입하게 됐어요. 제가 얼마나 ‘나는요’가 꽂혔던지 엉엉 운 적이 있어요. 제가 ‘봄비’를 처음 듣던 날 우연히 군에서 제대하는 가수 김범룡 씨가 왔어요. 김범룡 씨는 이혜민 씨와 친구인데, ‘봄비’를 듣고는 자기가 부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김범룡 씨가 먼저 가고 나서 이혜민 씨에게 ‘나는요’라는 부분만이라도 부르게 해달라고 한참을 매달리며 울었어요. 그래도 처음엔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한 6개월 흘렀나, 어느 날 갑자기 이혜민 씨가 녹음실로 호출하더니 ‘나는요’라는 부분을 불러보라고 하는 거예요. 6개월 전에 들은 노래를 부르라니 조금 당황했죠. 연습도 없이 악보를 보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부른 게 예음사 사장님 맘에는 들었나 봐요. 결국 듀엣으로 부르는 음반이 나온 거죠."
 
- 배따라기에서 솔로로 전향한 계기가 있나요.

"1981년 ‘배따라기’ 2집에서 ‘봄비’를 부른 이후 1987년 7집이 나올 때까지 줄곧 배따라기에서 함께 노래를 했어요. 돌아보면 참 힘들었다는 기억뿐 이네요.(웃음) 

어느 날 이진관 씨가 음반을 하나 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990년 ‘솔거의 그림’이라는 앨범을 냈어요. 곡은 좋았지만 잘 안 됐어요. 이후 배따라기 생활을 접겠다고 하니까 이혜민 씨가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에요. 제 이름으로 음반을 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됐지요.""낮에는 푹 쉬고, 오후 7시쯤 ‘열린 음악회’에 나와요. 오후 10시가 제 노래할 시간이지요. 밤늦도록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해요. 통기타를 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삶의 열정을 통기타로 발산한다고 해야 하나…. 통기타라는 게 참 좋은 악기예요. 치면 칠수록 매력에 빠지거든요. 통기타만 가지고 노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외국가수 ‘이글스’럼 통기타만 가지고 공연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곡 중에도 통기타만 가지고 할 수 있는 노래들이 많잖아요."

-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 원래 꿈이 가수였습니까.

"입을 떼자마자 노래를 불렀어요. 친척들의 용돈 ‘미끼’에 노래를 곧잘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이미자 씨 노래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제 또래 가수들이 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송창식 씨, 이장희 씨 같은 분들을 좋아했어요. 통기타 음악이 대세였잖아요."
 
- 향후 활동 계획은.

"통기타 위주의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새로운 음반도 만들 생각이고요. 제가 직접 통기타 연주하며 부른 곡으로 앨범을 만들까 생각 중이에요. 후배 가수랑 앨범 내는 것도 고려하고 있고요."
 
- 가수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 같은 경우 노래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주 5일 쉬지 않고 부르다가 주말에는 잠만 잤으니까요. 뭔가 한 가지 일을 하려면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열정만큼 연습도 중요하거든요. 끊임없는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2013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요. ‘복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해서 복을 지으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지금까지 제 음악을 사랑해주신 분들의 마음이 한결 같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앞으로도 음악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빠와 크레파스’는 제 얘기예요”
 
양현경의 대표곡 ‘아빠와 크레파스’는 양현경의 이야기다. 원래 가사는 ‘어젯밤에 우리아빠가 술 취하신 모습으로’라고 한다. 양현경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크레파스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선뜻 사주기 힘들었던 형편이었어요. 어느 날 약주를 하시고 들어온 아버지가 한 손에 크레파스를 들고 오셨죠”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20대 초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당시에 아버지 생각이 나서 이혜민 씨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곡을 만들어 준거에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술 취하신’으로 가사를 붙였는데 방송 심의에 걸려 ’다정하신‘으로 가사를 바꿨다.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동요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대중가요로 만든 곡이라고 한다. 양현경의 첫 솔로곡이자 그녀의 어린 시절이 담긴 애가(哀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