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영정 때문에 고견을 들으러 왔다고 하니까 대뜸 ‘징비록’을 읽었느냐고 물었어요. 거두절미하고 ‘선비 같다고 해서 나약한 선비로만 그리면 안 돼’ 하고 쐐기를 박았어요. 그 순간 머리에 어떤 섬광 같은 것이 스쳐 갔지요. 침착하고 엄숙한 얼굴 모습, 번쩍이는 눈빛, 태산 같은 위엄. 이것이 충무공의 진면목이리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참고로 할 겸 충무공의 출생지 현장을 답사하고 이 충무공의 후손을 만나 얼굴 모습, 골격 등도 살펴보고 싶어졌어요. 며칠 뒤 아산 온양에 내려가 종손 이응렬씨 집에 사흘 동안 머무르면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충무공의 체취가 어린 유물들을 접해보고 장검(長劍), 각대(角帶) 등을 스케치 했습니다.”
창전 이상범의 충무공 조상 |
1950년에 충무공 초상을 의뢰받은 이당 김은호는 3대원칙을 세웠다. 선비 같되 담기를 느낄 수 있는 뛰어난 위인상, 세부묘사에서 이중화의 부교본(符橋本: 전남 부교에 전해오는 충무공 화상) 참조, 의복은 충무공 시대의 다른 화상에서 취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들고 있는 칼이 일본도이고 얼굴이 지나치게 유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953년 월전 장우성은 문관복을 입었지만 씩씩해 보이는 인물로 표현해 냈고 그 인물의 당위성을 ‘이순신 장군 후손의 용모’에 두었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 9월8일까지 열리는 ‘역사속에 살다-초상 시대의 거울’전은 이같이 초상미술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인 한 개인의 삶을 기억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특정한 역사적 인물을 미술로서 기억할 때, 판단하고 구현하는 방식은 미술가가 존재했던 시대의 눈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대해 미술평론가 조은정씨는 “작가가 보지 못한 인물의 용모를 묘사하는 것은 개인의 특정 인물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고, 그것을 동의하는 눈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짐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