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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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화법 가르치는 조 에스더 대표

“마음의 문 열고 상대방 경청하는게 소통의 기본”
의사와 판사, 대학 교수에게 대화법을 가르치는 여자.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 엘 컴퍼니의 조 에스더(39) 대표 앞에 붙는 수식어이다.

지난 5년간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병원 의사 400여명에게 환자와의 대화법을, 대학 교수 200여명에게는 교수법을, 판사 16명에게는 법정 언행을 컨설팅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전문 직종의 사람들을 가르친다니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지난 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전문직종 컨설팅이 성공적인 이유 중 하나는 제가 그 분야의 비전공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들끼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환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용어들을 찾아 어떻게 쉽게 풀어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겁니다.”

정보 비대칭이 심한 전문직종과 일반인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 불안해하는 환자에게 어떻게 쉽고 효과적으로 진료과정을 설명하고, 나쁜 소식은 어떻게 전할지 등 환자와 신뢰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태도와 대화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지도 편달’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전공도 안 한 당신이 나를 가르친다니 당신이 생각해도 우습지 않아?’, ‘그렇게 잘 가르치면 지금 내 앞에서 강의해봐’ 등의 인신공격을 받기도 했다. 30대 초·중반의 여성, 그것도 비전공자가 40∼50대 의사와 교수, 판사를 가르친다니 예상하기 어려운 반응도 아니다.

“상대방의 비난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이 뭔가 요청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불편과 불만을 공감하는 쪽으로 돌려주면 됩니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회사 엘 컴퍼니의 조 에스더 대표는 “대화법을 가르치면서 ‘내가 이번에 이 사람을 고쳐야지’라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먼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줘서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범준 기자
경청하는 것과 더불어 치밀한 조사와 분석으로 만든 데이터 역시 그의 무기다.

“논리적인 분들이라서 데이터를 근거로 한 분석결과를 내밀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의사 컨설팅의 경우 의사 1인당 환자 15명을 진료하는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한 뒤 60문항으로 구성된 진단지를 작성한다. 그리고 일대일로 만나 의사에게 진단 결과와 함께 진료화면을 보여주고, 더불어 같은 전공 중 잘하는 다른 의사의 동영상과 비교하면 컨설팅을 거부했던 의사들도 진단 결과를 수용한다고 한다. 컨설팅 후 의사평가에서 5점 만점에 4.7∼4.9점을 받았다.

“의사들은 좋고 싫고가 명료하고 목표지향적이어서 자신에게 도움된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수용하기 때문에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요. 반면 판사들은 컨설팅할 때 분위기는 가장 좋지만 양측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고 신중한 판단을 하는 습성 때문에 판단을 마지막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운 상대로는 교수를 꼽았다.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사람으로서 가르치는 기술을 배우는 데 대한 반발도 있지만 학생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아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 직군은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다양한 사람들과 대인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부족하고, 늘 우월한 위치에서 갈등 상황이 생겨도 누군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줬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평등의식이 강화되면서 갑자기 사회로부터 소통능력을 요구받게 된 거죠.”

각 분야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도 있다. 진료든, 재판이든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 돼도 쉽게 흥분하지 않고 스트레스와 분노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은 가족과의 애착관계 형성이 잘 돼 있고 사생활 관리를 잘한다고 조 대표는 설명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조 대표는 YBM 시사영어사 교육팀으로 옮기며 자신이 가르치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갓 서른을 넘겼을 때 회사를 박차고 나와 삼성전자, SK 등 굴지의 대기업 직원 교육을 맡으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미 날고 기는 교육 전문가가 많았지만 똑같은 강의 주제도 해당 회사 직원뿐 아니라 고객사까지 설문조사하는 등 꼼꼼한 사전조사와 분석으로 차별화했다. 그리고 2009년 엘컴퍼니를 세워 대학과 의료, 법조계 등 전문직 컨설팅이라는 미개척 분야에 도전했다.

지난해부터는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감클래스’라는 무료 커뮤니케이션 강의와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 정치인 또는 정부와 국민의 소통이 원활해지도록 돕고 다리를 놓는 관계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