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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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인들, 무슨 낯으로 참사현장 찾아가 사진 찍나

정치인들이 참사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덜떨어진 행태는 4년 전에도 있었다. 피격된 천안함 병사를 구하러 바다로 뛰어들었다 순직한 고 한준호 준위 장례식장에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그랬다. 국록을 받던 그 최고위원은 비서를 시켜 영정 앞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경기도 지방선거 후보도 노골적으로 기념촬영을 하다 구설에 올랐다. 이들은 천안함 영웅을 추모하러 간 게 아니었다. 국민적 추모 열기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너무나 뻔했다.

정치인들의 꼴불견 행태는 4년 만에 되풀이되고 있다. 이윤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보좌관 3명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밤 해양경찰 경비정을 타고 사고해역을 둘러보았다. 새정치연합은 “이 의원이 전남 도당위원장 책무로 현장을 둘러보고 새벽까지 가족들을 위로했다”고 해명했다.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이 의원 일행 때문에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고 이로 인해 구조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왜 생각하지 않는가. 직접 사고 현장에 가 보지도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새운 실종자 가족에겐 피눈물이 나는 일이다.

사고 현장을 방문한 정치인은 50명이 넘는다. 새누리당은 황우여 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해당 지역구 의원이 참사 현장에 총출동했다. 김한길·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 등 야당의 현장 방문도 이어졌다. 정치인들의 사고 현장 방문을 모두 매도할 일은 아니다. 사고를 당한 가족과 아픔을 같이 나누고 구조대책 수립에 도움이 되는 진정성 있는 방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전시성 방문이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유력인사가 올 때마다 현장 공무원들은 보고하고 수행하느라 시간을 뺏긴다. 이들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 폭발은 인지상정이다.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은 업보와 무관하지 않다.

노회찬 전 의원은 “산소통 메고 구조 활동할 계획이 아니라면 정치인, 후보들의 현장 방문, 경비함 승선은 자제해야 한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재난 사고를 당한 다른 지역의 한 공무원은 “높은 사람이 오면 자료 만들고, 브리핑해야지, 안내해야지, 수행해야지,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사고 조치는 뒤로 밀리게 된다”고 했다. 결코 가볍게 넘길 소리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사고 수습에 방해되는 현장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 머리 숙여 자숙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