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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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한국 공무원, 미국 공무원

美 하위직 채용도 혹독한 검증 거쳐 공직 신성함 몸에 배
부패 문화 젖은 한국 공무원과 대조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건을 겪은 뒤 국가 개조를 국정의 화두로 제시했다. 국가 개조의 요체는 공직 사회 개조이다. 공직 사회의 ‘적폐’를 도려내는 일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 한국에서 이렇게 공무원이 지금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철밥통 공무원이 되려는 젊은이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공무원이 별로 인기가 없다. 올해 미국 대학 졸업자 중에서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회 초년생은 6%도 안 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연방 공무원 중에서 30세 이하의 연령층에 속하는 사람이 전체의 7%에 불과해 지난 8년 사이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는 민간 분야의 30세 이하 연령층 비율 25%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이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1975년 30세 이하 연령층이 전체의 20%를 점했었다. 미국 연방 정부의 신규 공무원 채용 방식이 까다롭고, 불투명하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공무원 대우도 좋지 않아 젊은이들이 공직을 외면하고 있다.

기자가 잘 알고 지내는 지인 중에 미국인 한반도 전문가가 있다. 그는 미국 정보 기관에 취직하려고 지원서를 냈다. 그 친구는 정보 기관이 자신을 완전히 발가벗기는 무시무시한 검증 과정을 겪으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말았다. 그는 마치 범죄 혐의자처럼 거짓말 탐지기 조사도 받았다. 면접관은 혼외 정사를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 캐묻기도 했고, 자주 만나는 한국인 리스트를 상세하게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결국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미국인임에도 미국인 친구보다 한국인 친구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에 정보 기관 요원으로 맞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얼마 전 기자의 집에 미국 국방부의 인사팀 소속 공무원이 불쑥 찾아왔다. 그는 기자의 앞집에 사는 데이비드라는 사람에 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데이비드는 현역 직업 군인이다. 데이비드는 전역한 뒤 국방부 산하 기관에 취직하려고 지원서를 냈던 것 같다. 데이비드가 이웃 주민과 어떻게 지내느냐? 그가 이웃 주민을 불편하게 한 일은 없느냐? 크게 부부 싸움을 하거나 아이에게 심하게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그에 대한 이웃 주민의 평판은 대체로 어떠냐? 그는 이런 식의 질문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미국은 말단 공무원 한 사람을 채용할 때에도 이렇게 이웃 주민, 직장 동료, 학교 친구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현장 조사를 한다. 그러니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정무직 고위 공무원에 대한 검증 절차가 얼마나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 후보를 물색하고, 특정 후보를 지명한 뒤 상원의 인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최소 6단계의 사전 검증 및 인사 청문회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1기인 제111대 의회에서 행정부 고위직 964명의 인준을 상원에 요청했고, 그중에 843명이 인준을 받아 87%의 인준 성공률을 기록했다. 이는 곧 13%에 해당되는 고위직 공직자가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원의 인준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지명자의 대부분이 한국에서처럼 개인 비리로 낙마한 게 아니라 정치 게임의 산물이다. 비리 혐의자는 사전 검증 절차에서 이미 충분히 걸러지기 때문에 상원에까지 가지도 못한다. 최근에 지명을 받은 한국의 일부 장관 후보자는 흠결 투성이로 미국이라면 하위직 공무원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미국 공무원이 한국 공무원보다 능력이나 일처리 측면에서 나은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미국 공무원은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최소한 공직의 신성함을 피부로 느끼는 학습 효과를 톡톡히 경험했을 것이다. 미국 공무원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을지라도 한국의 일부 ‘마피아’ 공무원처럼 집단적 부패 문화에 젖어 있지는 않다. 한국의 민관 간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부패 연결 고리를 끊으려면 하위직이든 고위직이든 공무원을 임용할 때부터 미국과 같은 다단계, 심층 청렴도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