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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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흑인시위’에 비상사태… 되레 갈등 증폭

미국 미주리주에서 발생한 10대 흑인 총격사망 사건 파문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촉발된 소요와 약탈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미주리주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주 당국의 이 같은 강경책이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사태를 악화시켜 항의 집회와 시위가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제이 닉슨 미주리주지사는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들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주도 세인트루이스 교외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따라 퍼거슨 등 미주리주 일부 지역에는 17일 0시부터 5시까지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됐다.

닉슨 주지사는 “소수 약탈자들이 나머지 지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정의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평화부터 이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닉슨 주지사는 통금 지역이 어디이고, 어느 수위로 시행할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장은 당국의 비상사태 선포에 항의하는 퍼거슨 시민들의 고성으로 가득했다. 한 시민은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마이클 브라운(18)을 위한 정의를 찾기 전엔 결코 잠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사태 선포까지 부른 흑인 소요 사태는 지난 9일 퍼거슨 도로 한복판에서 브라운이 백인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숨지면서 시작됐다. 경찰 당국이 해당 경찰관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공무휴직 처리하자 10일부터 퍼거슨을 중심으로 미주리주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4일 “지금은 치유가 필요한 때”라며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에 조사를 지시하자 항의 집회는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퍼거슨 경찰 당국은 15일 또다시 불을 질렀다. 그간 흑인 사회가 신원 공개를 요구한 가해 경찰관이 6년차 대런 윌슨이라고 밝히면서도 브라운이 피격 직전 인근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 TV 화면을 공개한 것이다. 유족들과 흑인 인권단체들은 “백인 경관의 비무장 흑인 살해라는 사건 본질을 흐리려는 꼼수”라며 또다시 격렬한 시위에 나섰다. 여기에 경찰이 고무탄과 최루탄을 동원해 강경 대응하면서 미주리주 흑백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통금이 발령된 뒤에도 200여명은 거리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과정에서 근처 식당에 있던 남성 1명이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며 시위대 7명이 체포됐다. 누가 총을 쐈는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경찰은 “거리에 있던 누군가가 총을 갖고 있었다. 경찰차도 총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흑인들은 18일에도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스티븐 호킨스 국제앰네스티 미국 지부장은 NYT에 “주지사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지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통행금지 등으로 대응한다면 양측 간 신뢰는 쌓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전체 주민의 60%가 흑인이면서도 시장과 경찰서장 등 주요 공직은 백인이 차지하고 있는 퍼거슨의 흑백 불균형 문제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