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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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의 ‘돈’ 이야기…탐욕의 역사]이집트의 사회복지 ‘피라미드’

피라미드 건설 통해 농한기 농민들에게 일자리 제공
강제노역과 거리 멀어…쉬고 싶으면 얼마든지 쉬는 일꾼들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유명하다. 워낙 크고 높아 고대의 기술력으로 건축이 가능할지 의문을 일으킨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피라미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네모나게 자른 돌을 하나씩 날라 차례로 쌓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피라미드 건설을 가리켜 사후 세계에 대한 종교적 믿음에 빠진 파라오의 횡포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나랏일은 뒷전인 채 무덤 만드느라 국력을 낭비하고, 내세에서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국민을 착취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주장이 역사학에서 주류로 받아들여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다르다. 피라미드 건설은 이집트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 즉 훌륭한 사회복지였다.

◆이집트 종교와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는 온갖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다양한 신들을 믿었다.

이 신들은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집트인들은 각 가정집이나 지역의 중심 신전에서 재물 봉납과 기도로 숭배했다.

이 중 제일 높은 신은 태양으로 이집트 왕 파라오를 흔히 ‘태양의 아들’이라고 일컬었다. 파라오는 이미 인간이 아니라 신인 것이다. 왕이 종교적인 권위까지 함께 누리는 정교일치의 체제로 고대 국가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 신화는 지중해 연안 나라들과 유대 민족의 종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일컬어지며 로마 문자 또한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역사를 서술할 때 쓰이던 신성 문자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신이 다양한 인격체를 포함하는 모습은 크리스트교 삼위일체의 기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파라오는 곧 살아있는 신이니 그 무덤도 함부로 쓸 수 없다. 가뜩이나 이집트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강해 미라라는 독특한 시체 처리법을 만든 나라다.

그래서 거대한 무덤 피라미드를 만들어 파라오를 매장했다. 이집트의 역사 기록을 보면, 파라오는 항상 즉위 직후 피라미드부터 만들 것을 명령한다. 즉위 시부터 사망 시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피라미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왕이 국정에는 관심 없고, 무덤이나 만들 궁리한다는 비판이 발생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파라오가 즉위 직후부터 피라미드를 만들게 한 것은 사실 국민을 위한 복지, 즉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였다.

◆자기 마음대로 쉬는 일꾼들

이집트는 흔히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국가 경제에서 길고 풍부한 수량을 지닌 나일 강에 의지한 농업의 비중이 컸다. 

압권은 매년 벌어지는 나일 강의 범람이다. 매년 8월 혹은 9월경 나일 강은 범람해 강가의 평야를 잠기게 한다. 덕분에 양분이 풍부한 흙이 강가 평야에 침전되고, 농지의 아래로부터 뿜어져 올라온 염분을 용해시켜 흘려보낸다.

이어 11월경 물이 빠지고 나면, 비옥한 토양이 남아 씨앗을 뿌리고 곡식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나일 강의 범람은 시기도 양도 거의 일정하고 규칙적이어서 이집트의 농민들은 매우 쉽게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무려 기원전 5000년경부터 이집트에서 문명이 발달한 것은 순전히 나일 강의 범람 덕이었다.

그런데 농번기에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지만, 농한기에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피라미드는 종교적인 권위와 더불어 이런 농민들에게 농한기에 일자리를 주고 급료를 지불해 먹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착공됐다. 현대로 치면 도로 건설, 다리 건설, 보도블록 갈기 등과 비슷한 사회복지 정책이다. 결코 파라오의 내세에 대한 열망이나 탐욕 때문이 아니었다.

이는 이집트에서 발굴된 한 고대 기록을 보면 확연해진다. 그 석판에는 피라미드 공사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휴식을 원할 때 내민 이유들이 기록돼 있다. 

세바라는 한 노역자는 전갈에 물렸다며 일주일 쉬겠다고 말했다. 코스는 하루는 몸이 아파 쉬고, 다음날은 잔치 때문에 쉬었다.

페소라는 사람은 아들 묘지 참배 때문에 쉰다고 통보했으며, 네페렙은 형 시신을 미라로 만드느라 일을 못 한다고 전했다.

심지어 이호텝은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숙취 때문에 괴롭다며 휴식을 청했다.

그밖에 “내 생일 이라서 쉬겠다”, “그냥 힘들어서 빠진다”, “오늘 너무 더워서 나가기 싫어서 쉬고 싶다” 등 현대 기업에서 과연 휴가를 내줄까 의심스러운 사유들도 잔뜩 있었다.

물론 이들의 휴가 청원은 모두 받아들여졌다. 특별한 절차도 없이 그냥 쉬겠다고 공사 감독관에게 전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피라미드 공사 중 제공되는 식사가 부실하다고 노역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기록도 나온다.

어떻게 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보다 더한 자유와 휴가를 만끽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파라오의 탐욕과 종교적 권위 때문에 무덤 건설에 국민들을 강제 동원한 거라면,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능했을까? 물론 아니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복지 정책이기 때문에 일 안하고 일단 안 받을 생각인 사람은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둔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준 피라미드는 오늘날에도 훌륭한 관광 상품으로 이집트 경제에 일조하고 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세계파이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