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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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과학放談] ‘천일염 신화’ 불편한 진실

서해안 청정해역의 깨끗한 바람과 햇빛으로 생산한 전통 천일염이 세계적 명품이라고 한다. 김치와 장에는 짠맛이 덜하고, 단맛이 나고, 미네랄이 풍부한 명품 천일염을 써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소금의 진짜 역사와 과학을 외면한 일부 식품 전문가들이 귀가 얇은 소비자에게 퍼뜨리고 있는 어설픈 천일염 신화에 따르면 그렇다.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2억6000만t의 소금 중 약 40%가 소금물을 햇빛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생산하는 천일염이다. 천일염이라고 모두 명품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품 천일염은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뿐이다. 오히려 식용에 적합한 재제염(再製鹽)과 정제염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천일염의 소비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일본과 대만의 천일염이 그렇고, 명성이 높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천일염도 이제는 생산을 중단하는 형편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학
천일염이 우리의 전통 소금이라는 주장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천일염의 전통이 있다. 제주도 구엄리에 남아있는 돌염전이 그 증거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식용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 자염(煮鹽)이다. 북한의 서해안 지방이 자염의 주산지였다. 현재의 염전은 대부분 1907년 일본인이 주안에 설치했던 주안염전에서 유래된 대만식이다. 신안군이 ‘국가중요어업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대동염전은 1946년에 처음 문을 열었고, 문화재로 지정된 증도의 태평염전도 1953년에 조성됐다.

우리가 천일염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의 천일염은 전통 자염보다 30% 이상 싼 값에 거래됐다. 1967년에는 맹독성 비소 때문에 논란이 있었고, 1976년에는 황산마그네슘의 독성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염전의 노동 환경은 크게 개선되었지만 ‘염전 노예’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결국 1997년에는 정부가 상당한 규모의 ‘염안정기금’을 조성해서 염전 폐지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퇴출 대상이었던 천일염이 극적으로 되살아난 것은 지역균형발전 정책 덕분이었다. 2006년에 식약청이 처음으로 식용 천일염의 기준을 만들었고, 2008년 지식경제부가 신안군을 명품 천일염 생산을 위한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했다. 언론과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는 천일염 신화는 고작 10년 전에 생겨난 것이라는 뜻이다.

천일염 신화는 과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천일염의 염도가 낮은 것은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탓이다. 천일염의 단맛도 역시 수분 때문이다. 천일염에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주장도 어설픈 것이다. 소금의 주성분인 염화소듐이 가장 대표적인 미네랄이다. 바닷물에 들어있는 마그네슘과 같은 불순물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간수(마그네슘)를 빼지 않은 천일염은 쓴맛 때문에 식용으로 쓸 수 없다. 대나무의 재가 뒤섞인 죽염에 대한 신화도 경계해야 한다.

깨끗하게 정제한 재제염과 정제염에 대해 괜한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천일염의 불순물을 제거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은 황당한 것이다. 전기분해로 소금을 정제한다는 인터넷 백과사전의 설명은 소금 공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오류일 뿐이다. 엉터리 신화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