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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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도경수가 연기하는 법



처음엔 ‘도경수’라는 이른 석 자가 꽤 낯설게 느껴졌다. 1993년생. 그룹 EXO, EXO-K 소속 아이돌. 그가 영화 ‘카트’를 찍었다고 했을 때 아마 대다수의 관객들은 아이돌이 연기 테스트쯤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도경수의 연기, 배우로서 가능성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궁금했다. 아직은 앳된 외모,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어떤 것일지.

지난 2일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도경수를 만났다.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아주는 모습에 한파 때문에 얼었던 몸이 금세 풀리는 기분이었다. 

‘참 예의 바르다’라던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구나. 그에게 영화 ‘순정’(감독 이은희)을 찍은 뒷이야기와 함께 연기를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 몇 년 후 한국영화계 속에서 그의 위치를 미리 그려보게 될 정도로 보통이 아닌 기운과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첫 주연작 ‘순정’을 스크린으로 본 소감이 궁금하다.

△ 솔직히 좀 아쉬웠는데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사투리가 아쉬웠고, 두 번째는 감정표현이 아쉬웠죠. 고흥에서 3개월 생활하면서 전라도 사투리는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보기에도 너무 어색한 거예요. 진짜 그곳에 사는 관객분들이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이 되고 궁금하기도 해요. 감정표현은… 제가 아무리 그 인물을 100% 이해하고 있더라도 그게 말과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게 연기하면서 항상 아쉬워요.

-영화 ‘카트’에 출연한 후 아이돌 출신 연기자임에도 연기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 글쎄, 그게 어떻게 그런 반응이 나온 건지 아직도 좀 신기해요.(웃음) 전 연기가 너무 재밌고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일이 좋아요. 연기하면서 제 진심이 통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비로소 희열을 느끼거든요. 그런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닐까 해요.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가 억울할 때는 없나.

△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잣대나 판단기준이 조금은 엄격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실까. 선입견을 없애고 싶을 때가 많죠.

-어쩌다 연기자가 됐나.

△ 중학생 때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노래도 좋아하지만, 연기나 요리에도 관심이 많았죠. 가수를 시작하면서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조금은 경험을 쌓은 뒤 시작하고 싶었어요. 어쩌다 보니 ‘카트’를 통해 제 모습을 처음 보여드리게 됐는데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용기를 많이 얻었죠.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다음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눈빛이 반짝) 그동안 유독 내면의 아픔을 가진 인물들을 많이 연기했어요. 이젠 아예 다른 모습의 악당이나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레버넌트’란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에서 톰 하디가 맡은 역할 같은 거요, 진짜 나쁜 놈인데 입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순정’ 현장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한 마디로 그냥 모두 가족이었어요. ‘순정’을 찍기 전엔 주연의 책임감이 어떤 건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처음엔 부담감이 컸는데, 산돌(연준석), 개덕(이다윗), 수옥(김소현), 길자(주다영) 등 5인방 대부분이 저보다 연기 선배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든든했고, 우리 5인방이 먼저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몰려다녔어요. 지금도 산돌, 개덕과는 종종 만나요. 함께 영화 보러 가고 그래요. 만나면 서로 전라도 사투리로 대화하죠. 아마 이 친구들과는 죽 같이 갈 것 같아요. 



-이제 ‘영화판’이 좀 익숙해졌는지.

△ 음…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 카메라 앵글이나 쇼트에 대한 건 많이 배웠는데, 연기는 한참 멀었어요. 아직도 의문이 많고 배워야 할 게 산더미죠.

-연기하면서 배역과 본인이 하나로 겹쳐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 아, 네!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뭔가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정말 엄청난 희열이 느껴지죠.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16화를 찍을 때였어요. 장재열(조인성)이 또 다른 자아였던 저(한강우 역)를 떠나 보내는 장면이었어요. 사실 강우는 늘 맨발이었어요. 그걸 본 재열이 제 발을 닦아주고 신발을 신겨주죠. 그때 마치 강우와 제가 ‘교집합’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 평소에 눈물을 거의 안 흘리거든요? 그때 촬영 끝나고 펑펑 울었어요. ‘아, 이런 거구나’ 제게 그런 감정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고 처음 안 거죠. 그건 마치 수많은 실로 얽혀진 검은 공이 있는데 실 하나가 뚝 끊겨버린 느낌? 잠시 멍해 있다가 엄청난 기쁨을 느꼈죠.

-‘순정’은 첫사랑을 그린 영화다. 첫사랑을 한 경험은? 있다면 연기에 도움이 됐나.

△ 아직도 사랑이 뭔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풋풋하고 사랑스럽고 그런 게 아니라, 슬프고 우울한 감정만 많이 남아있어요. 슬픈 신에서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어떤 연기가 가장 힘든가.

△ 아까 말씀 드렸듯이 눈물연기요. 전 눈물이 정말 없는 편이에요. 이번 작품 촬영하면서도 감독님께 “꼭 눈물을 흘려야 슬픈 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했을 정도예요. 그래서 살짝 안약의 힘을 빌렸어요. 그런데 점점 눈물이 생기긴 해요. 요즘은 영화 볼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가 있어요. 감성적으로 변해가나 봐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1년 후, 5년 후의 모습이 더 기대가 된다. 어떤 작품을 더 보여줄 생각인가.

△ 일단 조정석 형과 찍은 ‘형’을 5월에 만나보실 수 있고요.(웃음) 음. 스케줄은 정확히 정해진 게 하나도 없는데, 아마 하반기에는 아마 엑소(EXO)활동에 전념하게 될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이라면 큰 역할, 작은 역할 절대 가리지 않고 참여하고 싶어요. 지켜봐 주세요.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