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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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11> "개는 OK, 아이는 NO" 해외서도 '노 키즈 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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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노 키즈 존’(No kids zones)을 내거는 건 너무 심한 것 같아. 애 엄마들은 그잖아도 갈 곳이 부족한 데 말야.”

앞서 엄마가 된 친구는 유모차 입장을 거부하며 친구를 쫓아낸 식당에 대해 성토했다. 나는 식당에서 아이들 때문에 분노하거나 반대로 아들과 내가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이 없어 지금까지 유아와 아동의 입장을 금지하는 ‘노 키즈 존’ 논란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영국, 호주 등에서도 식당의 '아이 출입 금지' 방침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데일리 메일 캡처

친구의 말을 듣고보니 아이를 배척하는 이러한 조치가 심하다 싶은 생각은 들었다. 출산을 한 여성들은 대부분 사회와 단절된 채 외로움을 안고 지낸다. “산후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바깥 바람을 쐬야 한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에도 지난해 나는 외출을 거의 하지 못했다. ‘애가 응가를 하면 어쩌지’, ‘챙겨야 하는 아기 짐이 너무 많은데’라는 생각에 바깥 나들이가 부담스러웠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그렇게 집순이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것 같은 고립감을 느꼈다. 그 우울함을 알기에 엄마들의 분개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찬성하는 이유를 살펴본 뒤로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어 보였다. 찬성 측은 “우리는 식당에서 즐겁게 식사를 할 권리가 있다”, “떼쓰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가 문제다”,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 ‘맘충’(엄마의 ‘맘’과 벌레 ‘충’을 결합한 신조어)은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화를 낸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기에 식당은 위험한 곳이다. 사고가 나면 어찌하나”, “가게 주인은 자기 의지대로 영업점을 운영할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반대 측은 “아무리 민간 영역이라 할지라도 인종, 계급, 연령 등에 따라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일부 몰지각한 부모 때문에 개념있는 부모까지 배척하는 건 부당하다”, “아이와 부모가 다양한 곳에서 함께 외식하는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개구쟁이였던 시절이 있다. 어리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건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노 키즈 존 논란은 관용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라고 비판했다.

쉽사리 의견을 굳히기 어려웠던 나는 다른 나라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일부 언론에서 해외 사례를 소개했지만 프랑스·덴마크 등 시민의식이 발달한 나라에는 이런 후진적 논쟁이 없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이 논쟁의 이름이 ‘아동 출입 금지’라는 한국어가 아니라 ‘노 키즈 존’이라는 영어의 조합이 됐을까.

외신에서 관련 글을 찾아본 뒤 사뭇 놀랐다.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의 논쟁은 우리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영국 주류 언론의 기고문에서 한 영국 여성은 “차라리 애 보다 개가 더 얌전하다”며 ‘유아 혐오’를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게 아닌가. 영어권에서는 ‘노 키즈 존’과 같은 뜻인 ‘차일드 프리 레스토랑’(Child free restaurants), ‘Child free zones’, ‘Child free venues’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해 11월 자넷 스트리트 포터라는 여성이 영국 데일리 메일에 기고한 글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내가 왜 식당의 아동 출입 금지 조치에 찬성하나’라는 제목의 글이었다.(http://www.dailymail.co.uk/femail/article-3331117/Why-d-BAN-children-cafes-restaurants-incendiary-view-make-cheer-want-tip-spaghetti-hoops-author-s-head-writes-Janet-Street-Porter.html)
미혼인 이 여성은 “대부분의 엄마들은 후각이 마비된 것 같다. 아마도 임신이 여자들의 감각을 바꿔놓은 것 같다. 엄마들이 기저귀를 갈 때면 토할 것 같다”, “영국 가게들은 대부분 개의 출입을 금지하는데 사실 개가 아이들보다 낫다”, “부모들은 자녀의 행동을 창의적이고 유쾌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혐오감을 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나는 국내에서 이런 글을 인터넷상의 댓글로는 봤지만 언론에서 소개한 형태로는 본 적이 없었다. 이 글에 3347개의 댓글이 달린 점을 고려하면 ‘노 키즈 존’ 논쟁이 영국에서도 얼마나 뜨거운 지 알 수 있다. 세계 10대 일간지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가디언에는 반대로 “아이들의 레스토랑 출입을 금지하면 정중하게 식사 예절을 가르칠 기회를 잃게 된다”며 배제 논리를 비판하는 기고글이 실렸다.

지난해 호주의 한 유명 식당 사례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퀸즐랜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리암 플린은 “우리 가게를 이용하려면 베이비시터에게 애를 맡기고 오라”며 7세 미만 아이를 내쫓는 방침을 세워 호주 전역에서 논란이 됐다.

플린은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한 쌍의 부부가 2살 아기를 데리고 식당을 방문했는데 부모가 아무리 달래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플린은 부부에게 “너무 시끄러우니까 밖에 나가서 아기를 달래고 오라”고 제안했다. 기분이 상한 부부는 플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식당을 떠나면서 “Fuc* you”를 외쳤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동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격려했고 식당의 매출도 급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플린의 식당은 개의 출입을 허락한다”며 “사람을 개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밖에도 미국·독일 등에서도 전국이 들썩일 정도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지 일부 식당에서 ‘아이 출입 금지’를 내걸며 논란이 일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서 ‘노 키즈 존’ 논쟁이 달리 보였다. 후진적 논란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의식이 향상되며 일어난 갈등이었다. ‘식당에서 편안하게 대화할 권리’, ‘아이들과 함께 식사할 권리’ 등 양측의 권리가 부딪치며 발생한 문제였다. 권리 의식이 부족했다면 바람직한 문화 정착을 위한 비판의식과 주장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찬반 양측을 중재하는 타협의 목소리가 없고, ‘맘충’이라는 폭력적인 언어로 상처를 주는 점이 아쉬웠다. 서양에서도 개념 없는 부모에 대한 비판은 거세다. 우리나라처럼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 부모가 문제”라는 말도 똑같이 사용한다. 그러나 “맘충은 쫓아내야 한다”는 식으로 모성을 비하하며 대화의 여지를 차단하지 않는다. ‘노 키즈 존’ 관련 여론조사만 봐도 차이가 선명했다.

2011년 영국 텔레그래프에서 ‘차일드 프리 레스토랑’에 대한 찬반 조사를 한 결과다. 찬성이 37.04%, 반대가 8.98%였는데 이보다 훨씬 많은 54.44%가 중재안을 지지했다. ‘아이들도 모든 식당에 출입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할 경우 주변에서 주의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이후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식당을 나가야 한다’라는 의견에 절반 이상이 동의한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찬성, 반대 비율만 나열할 뿐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는 중재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노 키즈 존’ 논란이 양 극단에서 각자의 권리만 주장하며 극한 대립하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 공공장소에서의 예절 문화를 정착해가는 과정이 되려면 이런 타협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 “맘충에게 지적하면 여자들 커뮤니티를 통해 보복 한다. 처음부터 손님으로 받지 않는 게 상책이다”는 말도 이해는 하지만, 그런 태도로는 갈등만 깊어질 뿐이다. ‘쫓아내자’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교육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가 되길 희망한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